시편 99-100편 연구 > 교회학교

본문 바로가기

교회학교

매일성경공부 시편 99-100편 연구

페이지 정보

작성일 06월 09일 2021년

본문

시편 99-100편 연구

99편 :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99:1

왕의 거룩하심이 이 시 전체에 흐르는 3겹줄이다(3,5,9절). 시편 기자는 메시야를 이미 그분의 왕국을 세우신 것으로 본다. 그분은 ‘그룹 위에’(FWG) 좌정해 계시는데, 이는 아마도 그분의 보좌가 그룹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룹은 인간의 몸과 날개를 지닌 천사와 같은 존재이다. 그룹이 하는 일은 인간의 죄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변호하는 일이다. 보좌에 앉으신 왕의 모습이 위엄이 넘치므로 만민이 떨고 땅이 두려움으로 요동할 것이다.

99:2~3

여호와께서 시온의 보좌에서 다스리시니 그 능력과 위엄이 광대하시다. 그분은 땅의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신 통치자이시다. 그들은 그분이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높여야 한다.

99:4~5

이 권능의 왕께서는 또한 공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세 상의 통치자와 위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놀라운 조화이다. “능력과 의(義)가 마침내 결합되었다”(FWG). 그분의 왕국에서는 부정과 타락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평과 공의와 의가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다. 그분의 백성은 어떻게 그분을 높이고, 그분 발아래 엎드려야 하는지! 다른 대목에서는 하나님의 발등상이 언약궤(대상 28: 2), 성소(시 132:7), 시온(애 2:1), 땅(사 66:1), 하나님의 원수(시 110: 1)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는 아마 시온의 성소를 가리킬 것이다.

99:6~7

이 왕이 과거에 그분의 백성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바로 그 왕이시다. 모세와 아론이 그분의 제사장 중에 있었고, 사무엘이 그분의 중재자 중 하나였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모세와 사무엘은 제사장이 아니었으나 둘 다 하나님의 허락 아래 제사장 기능을 수행했다.)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구름기둥에서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말씀하셨으며,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율법을 수여하셨다. 그들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음성을 순종했으며, 비록 부분적이었지만 율법을 준수했다.

99:8

그러나 하나님이 그 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며, 지금도 계속 응답하시리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그분은 그들의 악한 행위는 지나치지 않으셨지만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셨다. 비록 형벌은 사함 받았지만 결과는 이생에 남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은혜는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범한 죄를 용서했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그를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 세 영웅은 이스라엘 백성 중 믿는 무리를 대표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실이던 것이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언약 백성에게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었으며, 지금도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99:9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 번 언급한 것은 이사야 6:3과 계시 록 4:8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그것은 헤버의 엄숙한 찬송시를 떠오르게 한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여! 성삼위 일체 우리 주로다.” (레지날드 헤버).

100편 : 옛 100편

 제네바 찬송가(1551년)에 나오는 그 곡조에 붙은 “옛 100편”(Old Hundredth)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진 이 시는 온 땅을 향해 여호와께 경배할 것을 촉구한다. 그 초청은 이스라엘의 좁은 영역을 넘어온 이방 나라로 전해진다. 바네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시의 요점은, 찬양은 한 나라에 관계되거나, 한 민족에게만 합당하거나, 히브리 민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합 당한 것이요, 언어와 환경을 막론하고 모든 민족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그들이 한 창조주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3절).”
우리는 이 다섯 구절의 짧은 시를 통해 예배란 단순한 것이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여기서 가장 긴 단어는 ‘감사’(thanksgiving), ‘영원하고’(everlasting), ‘대대’(generations) 등이다. 표현이 복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예배임을 배우게 된다. 단어 그 자체가 놀라움을 잔뜩 내포한다. 평범한 사실이 꾸밈보다 더욱 놀랍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분명한 구조가 나타나 있다.
예배의 촉구(1,2절). 예배의 이유(3절).
예배의 촉구(4절). 예배의 이유(5절).

또한 예배의 일곱 가지 요소가 암시되어 있다.
즐거이 부르라(1절).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2절).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가라(2절).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4절)
감사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라(4절).
그에게 감사하라(4절).
그 이름을 송축하라(4절).

우리는 그분의 어떠하심으로 인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주되심(1절). 하나님 되심(3절). 창조주 되심(3절). 소유주 되심(3절). 목자 되심(3절).

우리는 그분의 속성으로 인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그분은 선하시다(5절).
그분의 인자는 영원하다(5절).
그분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미친다(5절).
앞의 세 구절에서 하나님은 창조주로 경배 받으신다. 그러나 뒤의 두 구절에서는 갈보리를 문맥에 넣기가 어렵지 않은데, 왜냐하면 갈보리만큼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뚜렷이 볼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그분의 영화로운 권능을 선포하고 그분의 모든 행사가 그분의 지혜를 표현하네. 그러나 오,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리요? 예수께서 잘 말씀해주셨네!” (사무엘 메들리). 3절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놀라운 사상의 결합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그분이 가까이 할 수 없이 높이 계심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 분의 것임도 알게 되는데, 그것은 그분이 무한히 가까이 계심을 말 해준다. 이 시가 두려움과 움츠림 대신 기쁨과 노래를 발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 시는 복스런 하나님을 위한 즐거운 노래이며,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잘 알려진 가사로 찬송가에 보존되어 왔다.

“땅에 거하는 온 백성이여 즐거운 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세. 기쁘게 그를 섬기며 그를 찬양하세. 그 앞에 나아가 즐거워하세. 여호와가 정녕 하나님이심을 아세. 우리의 도움 없이 그가 우리를 지으셨네. 우리는 그의 양이며 그가 우리를 먹이고 우리를 인도하시네. 오, 찬양하며 그의 문에 들어가세. 기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세. 항상 그의 이름을 찬양하고 높이고 송축하세. 그것이 실로 합당하네. 왜 합당하냐고? 주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히 견고하며 그 진실하심이 항상 든든히 섰고 또 대대에 미칠 것이기 때문일세.” (스코틀랜드 찬송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