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공부 시편 125-126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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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6월 28일 2021년본문
시편 125-126편 연구
125편: 평강의 길
125:1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의 작은 봉우리 중 하나로서 때때로 예루살렘 성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최고의 안정성과 힘을 지닌 것, 즉 요동치 않는 성을 의미한다. 믿음의 사람은 그와 같다. 그의 삶은 견고한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몰아쳐도 반석 위에 지어진 까닭에 그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마 7:25). 시편 기자는 시온산이 영원히 있다고 말한다. 지상의 도성에 관한한, 이것은 그 당시 신자들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약에서 땅이 언젠가 불로 멸망한다는 것을 알 고 있다(벧후 3:7,10,12). 그러나 우리 자신도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영원한 산이니, 영원한 도성이니(로마) 하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중요한 사실은, 시온 산은 비록 언젠가 멸망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의 신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신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안전하게 하시는 만큼 안전하다.
125:2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특징에서 또 다른 영적인 진리를 보았다. 그 성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군대가 그 성에 접근하는 일체의 공격을 방어할 수가 있다.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친히 그분의 자녀들을 둘러싼 보호막이 되어 주신다. 이것이 사단이 말한 욥을 둘러싸고 있는 그 울타리이다.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욥 1:10)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성도에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125:3
또 하나의 놀라운 주장이 3절에 나와있다.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혹자는, 이스라엘 땅이 종종 악인에게 침략과 정복을 당하지 않았느냐고 본문 상반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는지 모른다. 물론 그런일이 있었다. 그러나 본절은 문맥에 맞춰 해석해야 한다. 이 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시의 약속들은 그런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이스라엘의 경계가 침범을 당하고 그 성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들이 여호와를 순종하고 신뢰하는 동안은, 악인의 권세가 그들 가까이 이르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왜 하나님이 그들의 악한 대적을 막아주셨는지 그 흥미로운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의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에 손을 대고픈 유혹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외부의 적으로부터만 아니라, 내부의 자아와,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 죄를 범하기 쉬운 자아의 성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125:4
4절 역시 문맥에 맞게 이해해야 한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여기서 말하는 ‘선한’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주님께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정직함은 그들의 구원의 기초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의 열매이다.
125:5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라고 고백하면서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자들을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포로되고 흩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시는 이스라엘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 평강을 얻는 비결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발견된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찌른 분에게 돌이키고 독자를 위해 슬퍼함같이 그분을 위해 슬퍼할 때, 그 때 오랜 세기 동안 그들을 벗어났던 평강이 마침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샬롬, 샬롬!
126편: 눈물의 뿌림, 기쁨의 거둠
126:1
조서가 유대인 포로 지역에 전해지자 유대 백성들은 전율과 환희에 사로잡혔다. 바사왕 고레스가 포로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선포했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기나 긴 포로 생활을 보내면서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을 생전에 다시 볼 수 있을지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그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 안되는 소지품을 챙기는 동안 그들은 마치 꿈길을 걷는 듯했다.
126:2
그렇지 않아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말을 즐겨하던 백성들이 흥분이 고조되어 더없이 시끄러웠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기뻐할 일이 생겼다. 고향에 돌아간다니! 귀향 채비를 서두르면서 웃고 노래 부르는 일은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126:3
그것은 이방 백성들에게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유대인들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개입하셨다고 여겼다. 지상의 다른 민족들 위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사랑과 돌보심의 특별한 대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오직 여호와의 손길의 결과로 받아들이면서 기쁨에 찬 포로들은 이방인들과 같은 고백으로 감격을 표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6:4
그러나 그들은 걸치고 있는 옷밖에 아무것도 없는 가련한 잔존자의 형편으로 고국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권력과 재정과 보호가 필요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남방(히브리어로 ‘네게브’)은 남쪽 사막이었다. 평상시에 그곳은 메마론 볼모지였다. 그러나 비가 내리면 말랐던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초목이 무성해졌다. 그처럼, 지금은 소수에 불과한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어 열두 지파 모두가 돌아가게 해달라고 귀환중인 포로들은 기도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재건과 복구 수단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 땅에서 행복하고 열매맺는 백성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했다.
126:5~6
그들이 돌아간 첫 해는 특히 힘들 것이다. 곧바로 추수할 곡식이 전혀 없을 것이다. 빨리 곡물을 심고 추수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때는 식량을 가급적 절약해야 하는 결핍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첫 곡물을 얻기 위해 씨를 뿌리는데는 다소간 슬픔과 좌절이 따를 것이다. 여기에 적은 곡물을 수확한 한 농부가 있다. 그는 거둔 곡식을 당장의 필요를 위해 가족의 양식으로 다 사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장래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고 그 대부분을 밭에 심을 수도 있다. 그는 그것을 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앞치마에 손을 깊이 넣어 씨를 경작된 땅에 흩뿌리는 동안 눈물이 앞치마에 떨어졌다. 아내와 자식들과, 형편없는 죽사발과, 그리고 추수할 때까지 얼마나 참고 견뎌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식구들의 입에서 양식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환한 포로들의 입술에는 이러한 즐거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렇게 그들은 나아가 씨를 뿌렸다. 그들의 현재의 고난은 익은 곡식단을 곳간에 들이는 기쁨에 의해 넉넉히 보상받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물론 영적인 영역에도 적용된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게 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사는 사람은 현재에는 궁핍할지 모르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보는 기쁨과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하는 기쁨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영혼을 얻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영혼을 위해 처음 눈물 흘리는 자가 영혼을 얻는 자다”라고 적절히 표현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러해야 한다. “구주께서 그러하셨듯이 무리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 눈이 눈물로 흐려질 때까지 바라보게 하소서. 길 잃고 헤매는 양무리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저자 미상).
125편: 평강의 길
125:1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의 작은 봉우리 중 하나로서 때때로 예루살렘 성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서는 최고의 안정성과 힘을 지닌 것, 즉 요동치 않는 성을 의미한다. 믿음의 사람은 그와 같다. 그의 삶은 견고한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비가 오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몰아쳐도 반석 위에 지어진 까닭에 그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마 7:25). 시편 기자는 시온산이 영원히 있다고 말한다. 지상의 도성에 관한한, 이것은 그 당시 신자들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약에서 땅이 언젠가 불로 멸망한다는 것을 알 고 있다(벧후 3:7,10,12). 그러나 우리 자신도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영원한 산이니, 영원한 도성이니(로마) 하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중요한 사실은, 시온 산은 비록 언젠가 멸망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의 신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신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이 안전하게 하시는 만큼 안전하다.
125:2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특징에서 또 다른 영적인 진리를 보았다. 그 성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군대가 그 성에 접근하는 일체의 공격을 방어할 수가 있다.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친히 그분의 자녀들을 둘러싼 보호막이 되어 주신다. 이것이 사단이 말한 욥을 둘러싸고 있는 그 울타리이다.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욥 1:10)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성도에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125:3
또 하나의 놀라운 주장이 3절에 나와있다.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혹자는, 이스라엘 땅이 종종 악인에게 침략과 정복을 당하지 않았느냐고 본문 상반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는지 모른다. 물론 그런일이 있었다. 그러나 본절은 문맥에 맞춰 해석해야 한다. 이 시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시의 약속들은 그런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이스라엘의 경계가 침범을 당하고 그 성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들이 여호와를 순종하고 신뢰하는 동안은, 악인의 권세가 그들 가까이 이르지 못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왜 하나님이 그들의 악한 대적을 막아주셨는지 그 흥미로운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의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에 손을 대고픈 유혹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외부의 적으로부터만 아니라, 내부의 자아와,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 죄를 범하기 쉬운 자아의 성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125:4
4절 역시 문맥에 맞게 이해해야 한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여기서 말하는 ‘선한’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주님께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정직함은 그들의 구원의 기초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의 열매이다.
125:5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라고 고백하면서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자들을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포로되고 흩어지는 상황에 처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시는 이스라엘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 평강을 얻는 비결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발견된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찌른 분에게 돌이키고 독자를 위해 슬퍼함같이 그분을 위해 슬퍼할 때, 그 때 오랜 세기 동안 그들을 벗어났던 평강이 마침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샬롬, 샬롬!
126편: 눈물의 뿌림, 기쁨의 거둠
126:1
조서가 유대인 포로 지역에 전해지자 유대 백성들은 전율과 환희에 사로잡혔다. 바사왕 고레스가 포로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선포했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기나 긴 포로 생활을 보내면서 많은 이들이 예루살렘을 생전에 다시 볼 수 있을지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그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 안되는 소지품을 챙기는 동안 그들은 마치 꿈길을 걷는 듯했다.
126:2
그렇지 않아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말을 즐겨하던 백성들이 흥분이 고조되어 더없이 시끄러웠다. 70년 만에 처음으로 크게 기뻐할 일이 생겼다. 고향에 돌아간다니! 귀향 채비를 서두르면서 웃고 노래 부르는 일은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126:3
그것은 이방 백성들에게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유대인들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개입하셨다고 여겼다. 지상의 다른 민족들 위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사랑과 돌보심의 특별한 대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오직 여호와의 손길의 결과로 받아들이면서 기쁨에 찬 포로들은 이방인들과 같은 고백으로 감격을 표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126:4
그러나 그들은 걸치고 있는 옷밖에 아무것도 없는 가련한 잔존자의 형편으로 고국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권력과 재정과 보호가 필요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남방(히브리어로 ‘네게브’)은 남쪽 사막이었다. 평상시에 그곳은 메마론 볼모지였다. 그러나 비가 내리면 말랐던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초목이 무성해졌다. 그처럼, 지금은 소수에 불과한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어 열두 지파 모두가 돌아가게 해달라고 귀환중인 포로들은 기도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재건과 복구 수단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 땅에서 행복하고 열매맺는 백성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했다.
126:5~6
그들이 돌아간 첫 해는 특히 힘들 것이다. 곧바로 추수할 곡식이 전혀 없을 것이다. 빨리 곡물을 심고 추수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때는 식량을 가급적 절약해야 하는 결핍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첫 곡물을 얻기 위해 씨를 뿌리는데는 다소간 슬픔과 좌절이 따를 것이다. 여기에 적은 곡물을 수확한 한 농부가 있다. 그는 거둔 곡식을 당장의 필요를 위해 가족의 양식으로 다 사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장래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고 그 대부분을 밭에 심을 수도 있다. 그는 그것을 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앞치마에 손을 깊이 넣어 씨를 경작된 땅에 흩뿌리는 동안 눈물이 앞치마에 떨어졌다. 아내와 자식들과, 형편없는 죽사발과, 그리고 추수할 때까지 얼마나 참고 견뎌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식구들의 입에서 양식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환한 포로들의 입술에는 이러한 즐거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렇게 그들은 나아가 씨를 뿌렸다. 그들의 현재의 고난은 익은 곡식단을 곳간에 들이는 기쁨에 의해 넉넉히 보상받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물론 영적인 영역에도 적용된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게 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사는 사람은 현재에는 궁핍할지 모르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보는 기쁨과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하는 기쁨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다! 영혼을 얻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영혼을 위해 처음 눈물 흘리는 자가 영혼을 얻는 자다”라고 적절히 표현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러해야 한다. “구주께서 그러하셨듯이 무리를 바라보게 하소서. 내 눈이 눈물로 흐려질 때까지 바라보게 하소서. 길 잃고 헤매는 양무리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저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