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성경통독]
(개역개정)
[욥기 35장]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욥기 36장]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에 대한 삶
[욥기 35장]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본장은 욥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침묵하신 것에 관한 말에 대해 반론을 펴고 비판하는 엘리후의 세번째 변론이다. 엘리후의 논지는 욥이 자신의 결백을 하나님 앞에서 지나치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의가 아무리 온전하다 해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 신앙이 무익하다 한 욥을 비난함 ( 3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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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 하나님의 초월성
ㄱ) 엘리후의 논리 비약 ( 35:1-2 )
욥의 자세가 스스로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하였다. 사실 욥은 다만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강하게 호소한 것뿐이었는데도 엘리후는 그것을 확대 적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엘리후의 증거는 옳은 말이지만 그의 친구 욥이 하나님을 불의하게 평가했다고 주장한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었던 것이다.
ㄴ)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 ( 35:3-5 )
엘리후는 욥이 던졌던 몇 가지 호소성 질문에 대하여 욥과 그와 함께한 다른 친구들에게 답변해 주겠다고 말하였다. 육체를 가지고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며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사랑하고 계시다.
ㄷ)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함 ( 35:6-8 )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판단하심에 하나님 자신의 이해 관계로써 하지 아니하신다. 엘리후는, 인간은 하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인간이 사는 세계를 초월할 수가 없는 존재임을 언급하였다. 하나님과 관계 없다는 엘리후 견해를 수용한다면 성도들이 소유한 신앙관과 다르게 된다.
[2]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불평 ( 35: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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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 악인의 그릇됨과 간구
ㄱ) 학대가 많은 세상 ( 35:9 )
죄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정의와 도덕은 깨어지고 인간 세계에는 학대가 많이 발생하였다.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게 되었다.
ㄴ) 호소하지 아니함 ( 35:10 )
엘리후는 이 세상에 학대가 많음을 언급하면서 학대받는 자들이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서는 도움을 청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진정한 도움은 하나님에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진정한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찬양했다 (시121:1-2).
ㄷ) 응답이 없는 헛된 부르짖음 ( 35:12-13 )
엘리후는 학대받는 자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는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헛된 부르짖음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헛된 부르짖음은 교만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거나 믿음 없는 자의 부르짖음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3] 엘리후가 꾸짖은 욥의 불신앙 ( 35: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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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 권고와 책망
ㄱ) 하나님을 신뢰하라 ( 35:14 )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은 그 앞에 있으니 자신은 그를 기다릴 뿐이라는 말을 하나님께 함부로 하였기 때문에 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욥은 깊은 신앙의 소유자였지만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계속되는 고난 앞에 절망에 빠졌다. 사실 성도들이 겪는 큰 시험에는 욥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에 대하여 실망함으로써 오는 좌절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모두 다 알고 계시며 그러한 자들에게 참된 희망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
ㄴ) 자비하신 하나님 ( 35:15 )
엘리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욥에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다고 묘사하였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닐지라도 모든 인생을 인도하신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양 떼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시고 초장으로 인도하신다.
ㄷ) 헛된 말과 지식 ( 35:16 )
엘리후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간사에 대해서 인간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헛된 지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결론
본시편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관해 언급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과 인간의 삶을 완전히 격리시키고 말았다. 성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생활은 매우 긴밀한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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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6장]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에 대한 삶
본장은 엘리후의 계속된 변론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적인 섭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엘리후의 마지막 충고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엘리후는 다소 누그러진 어투로 욥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재차 강조하며 욥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했다. 아울러 고통당할 때 죽기를 바라며 생을 체념하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주고자 했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권면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더 이상 부정적인 고백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1] 하나님의 의를 밝힘 ( 3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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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ㄱ) 지식과 의의 근원자 ( 36:1-4 )
엘리후는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조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며 실수가 전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엘리후는 일차적으로 욥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식 앞에 세우기를 원안다. 그는 무한한 지식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욥의 옆에 계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지식을 가지실 뿐만 아니라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것은 그에게 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진실하시며 완전한 의를 가지고 계신다.
[2] 하나님의 섭리 ( 36: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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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ㄱ) 의인과 악인 ( 36:5-8 )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고난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신다고 했다. 또한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그를 존귀하게 하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의 행실을 저울질하셔서 의인은 왕과 같이 존귀하게 하시지만, 악인은 살려 두지 않으신다. 그래서 엘리후는 욥에게 비록 지금은 고난을 받을지라도 궁극적인 의인의 승리를 믿고 인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ㄴ) 의인이 받는 고난의 이유 ( 36:9-10 )
엘리후는 의인에게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아오게 함이라고 했다. 엘리후는 다른 세 친구들의 의견과는 달리 의인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하는데, 이는 엘리후가 하나님의 섭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만 성도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신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성도만이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다.
ㄷ) 형통할 자와 망할 자 ( 36:11-14 )
엘리후는 하나님을 청종하는 자에게는 형통함으로, 그리고 끝까지 돌이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징계를 베푸신다고 역설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 남달리 특출하였으며 열심으로 그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이다. 본문 13-14절은 12절에 기록된 악인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악인들은 분노를 쌓고 있다고 엘리후는 말했다.
[3] 욥에 대한 경고와 교훈 ( 36: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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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16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18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21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ㄱ) 복된 상태 ( 36:15-19 )
하나님은 구원하실 때 단순히 고통에서 해방시키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나은 복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 엘리후는 옛날의 번영을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말로서 욥이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계속해서 엘리후는 욥의 완악함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이 곧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내리시는 벌을 내리게 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엘리후의 오해이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연단이기 때문이다.
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 36:20-23 )
엘리후는 욥에게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며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충고했다. 계속해서 엘리후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한 지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오직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한다.
[4] 하나님께 굴복하여야 하는 이유 ( 36:2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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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 전능하신 하나님
ㄱ)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을 찬송하라 ( 36:24-26 )
욥에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지 말라고 했던 엘리후는 이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송하기를 잊지 말라고 권면한다. 즉 극심한 고통 중에 있다고 해서 창조와 섭리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잊지 말고 항상 찬송하라는 것이다. 또한 엘리후는 하나님이 크시므로 인간이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 무한한 존재를 유한한 존재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한 인간의 마땅한 도리인 것이다.
ㄴ) 자연 법칙을 만드심 ( 36:27-29 )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을 진술한 엘리후는 이제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는 과정을 말하였다. 증발된 물은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고 땅으로 비가 되어 쏟아진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피조 세계의 신비로움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무한성을 우리에게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로서 모든 피조물의 찬송을 받으실 유일한 존재이다.
ㄷ)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연 ( 36:30-33 )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을 두르시며 바다 밑도 비치신다고 말하였다. 이는 순식간에 하늘에 비춰 빛을 발하는 번개의 웅대함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만민을 징벌하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풍성하게 주신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은 온 세계 만물에 미친다.
결론
본장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실제적인 권면으로 충고 하였다. 그는 사람이 까닭 없이 환난을 당하는 것에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불평이 아니라 찬양을 드려야 함을 역설하였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