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연구 시편 3-4편 > 교회학교

본문 바로가기

교회학교

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3-4편

페이지 정보

작성일 04월 02일 2021년

본문

 시편 3-4편 연구

3편 :
감정변화에 대한 연구
만일 우리가 감정이 쉬 변한다면 다윗 역시 그러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 시에서 다윗은 어두운 절망에서 고요한 확신으로 감정이 급변하고 있다.

3:1~2
처음에 다윗은 대적에게 압도되었다. 그들의 우월한 수로 인해 마음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많은 대적이 나를 에워 쌌으니 어찌 할꼬?” 또한 그는 대적의 웅성대는 말에 압도되었다. 그들은 그의 죄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소망을 끊어버렸다고 비난 했다. 2절은 ‘셀라’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로 끝난다. 이것은 시편에 나오는 71회 중 첫 번째 사례이므로 여기서 잠시 그 단어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불행히도 여기서의 고찰은 설명이라기보다는 무지를 고백한 것이라 하겠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 단어가 무슨 뜻 인지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제안된 의미들을 열거하고 독자로 하여금 최선의 것으로 보이는 것을 결정하게 하는 것뿐이다. ‘’셀라‘는 목소리나 악기 연주소리를 크게 하는 것, 즉 크레센도 (cresendo)를 의미할 수 있다. 그것은 “멈추어 그것을 생각해보라”라고 말하는 듯한, 막간 내지 휴식을 가리킬 수 있다. “그것은 70인역에 ‘디아프살모스’로 옮겨졌는데, 그것은 크게 연주하는 것(‘포르테’)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간주(間奏)를 의미할 수도 있다(후자가 더 가능성 있다).”8) 어떤 이들은 그것이 ‘다 카포’(DC) 같은 반복을 의미한다고 생각 한다. 그것은 악장(樂章)의 종결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것은 경의 내지 존경의 표로 몸을 굽히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3:3
이 시의 분위기가 3절에서 바뀐다. 다윗은 눈을 대적에게서 여호와께로 돌렸으며, 그것은 그의 온 전망을 변화시켰다. 즉시 그는 여호와 안에서 자신이 방패와, 영광의 근원과, 그의 머리를 드시 는 분을 소유했음을 깨달았다. 그의 방패로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적의 살해로부터의 완전한 보호를 허락하셨다. 그의 영광으로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그 동안 그에게 쌓이던 수치와 비난과 비방 대신 영예와 위엄과 변호를 허락하셨다.

그의 머리를 드시는 분으로서 여호와께서 그를 격려하고 높이셨다.

3:4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참되고 탁월한 생각에 감명되어 다윗은 기도로 여호와께 나아갔으며, 자신의 간구가 열납되고 응답되었다는 즉각적인 확신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성산에서, 즉 그분의 백성 중에 거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응답하셨다.

3:5~6
여호와의 보호를 확신한 까닭에 시편 기자는 누워 잠이 들었다. 그것은 극히 달콤한 잠이요, 삶의 극한 상황 중에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편안한 밤을 보낸 뒤에 다윗은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마음상태를 평정케 하신 이가 여호와시라는 의식과 함께 깨어났다. 이제 그는 천만인이 그를 에워싼다 하더라도 대적을 두려움 없이 대면할 용기를 얻었다!

3:7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도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난 밤 우리를 지탱해준 은혜가 오늘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원수의 뺨을 치시고 악인 의 이를 꺾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께 지속적인 구원을 간구했다.

3:8
다윗에 관한한, 여호와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그 놀라운 구원을 지속적으로 베푸심으로 그분의 백성들을 축복 하시기를 구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의 요동하는 감정은 이 시의 표제어를 다시 한 번 살펴봄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다윗의 대적의 우두머리는 그의 아들이었다! 대적이 이방 침략자 들이었어도 극히 곤란했을 터인데, 대적이 다윗의 반역한 아들의 지휘를 받고 있었기에 거기에 슬픔과 비통함이 더해졌다.


4편 :
은밀히 평온케 하시는 분

4:1
다윗은 여호와의 존전에 들어가서 그분을 ‘내 의의 하나님’이 라고 불렀다. 이것은 공의의 하나님이 다윗을 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람들은 모욕하고 배척할 수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을 아시며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아신다! 이어서 다윗은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다”고 덧붙였다

4:2~3
다윗의 호소의 직접적인 배경은 2~5절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는 거짓을 일삼는 자들에게 모욕과 비방을 받고 있었다. 그 비방자들은 그의 이름을 실추시키고 그의 인격을 말살하고, 근거 없는 고소와 공공연한 거짓말로 그의 평판을 손상시키고 있었다. 다윗은 그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격노할는지를 물은 다음, 하나님이 그의 편이므로 그를 넘어뜨리려는 그들의 노력이 소용없을 것이 라고 일깨워주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들은 “그분의 눈동 자”와도 같다(슥 2:8). 그들의 이름은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 (사 49:16). 그분은 그들이 부를 때 들으시고 속히 그들을 도우러 일어나신다. 이렇게 하여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 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한 바울의 고백(롬 8:31)을 미리 들려주고 있다.

4:4
다윗의 대적은 그 뜨거운 분노를 식혀야 했다. 만일 분노하려면 의로운 목적을 위해서 해야 한다. “분내어(우리말 성경 난하주 참조-역주) 범죄치 말지어다”라는 문구는 에베소서 4:26에 인용되었는데, 거기서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권면하는 중에, 하나님을 위해서 분노하는 것은 옳으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분노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여기 시편 4편에서는 물론 악인을 대상으로, 분노를 과격한 행동으로 표출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그들은 고요한 밤에 자리에 누워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을 대항해서 싸운 일의 어리석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그들의 비방이 그치고 그들의 악한 계획이 무산될 것이다.

4:5
담대한 전도자의 추진력을 드러내며 다윗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에 실질적인 의를 더하라고 악인에게 권고했다. “공의를 제물 로삼으라”(Gelineau). 그러나 이 일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4:6
많은 사람들이 번영과 행복을 원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선 (善)을 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축복하는 자 없는 복을 구하고 하나님 없는 선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의 모든 혜택을 원하면서 그 혜택을 주시는 분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과 대조적으로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말하며 모든 선의 근원되신 분께로 직접 나아간다.

4:7
그가 여호와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불경건한 자들이 곳간에 곡식이 가득하고 항아리에 포도주가 차고 넘칠 때 맛보는 기쁨을 훨씬 능가한다.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한 수확도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만한 기쁨을 주지 못한다”(Knox).

4:8
여호와의 충족성을 확신한 까닭에 시편 기자의 내적인 파문은 가라앉는다. 이제 그는 그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 이심을 아는 가운데 평안히 누워 잠잘 수 있다. 이 8절로 된 짧은 본문에서, 기도는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