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7-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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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06일 2021년본문
시편 7-8편 연구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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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 <br>
압박당하는 자의 부르짖음 <br>
히브리어 부제는 이 시를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노래한 다윗의 ‘식가욘’”이라고 밝히고 있다. F. W. 그랜트는 ‘식가욘’이란 단어가 기자가 열정적으로 몰입한 방랑시, 혹은 크고 열정적인 찬양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송시(訟詩)의 대상인 ‘구시’ 는 사울과 같은 지파 출신으로서 아마도 그의 부관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다윗의 사악한 대적이었다. NKJV는 ‘식가욘’을 ‘묵상’이라고 옮겼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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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br>
열정적인 호소를 통해 다윗은 추적자에게서 건져달라고 기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사자의 공격을 받아 찢긴 무력한 새끼 양처럼, 절뚝거리고 기진할 것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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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br>
구시는 아마도 사울의 생명을 해하려하고 그 물자를 약탈하려 한다는 죄목을 포함한 긴 죄목으로 다윗을 비난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는 그런 죄를 범치 않았다. 그의 손은 약탈을 한 적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울 왕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실제로 그런 일을 행했다면 그는 기꺼이 응분의 책임(쫓기고 사로잡히고 짓밟히고 죽임을 당함)을 지고자 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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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 <br>
그러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그는 담대히 여호와께 진노로 일어나 대적을 징벌하고 무고한 자를 변호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이 큰 재판을 집행하시는 모습을 묘사한다. 큰 무리가 법정에 모였다. 여호와께서 재판 자리에 앉아 민족들을 재판하신다. 다윗이 구하는 바는, 다만 그 자신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재판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교만한 요청처럼 들릴 수 있으나, 우리는 다윗이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퍼부어지는 고소들에 대해서만 의를 주장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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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1<br>
9절은 하나님의 압제받는 백성들의 오랜 부르짖음을 보여준다. 모든 경건한 심령은 죄악의 다스림이 끝나고 의인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실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사이에, 인간의 생각과 동기를 아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정직한 자와, 매일 악인에게 분노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의 방패 혹은 보호자가 되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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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13 <br>
하나님은 훌륭한 병기고가 있으시다. 악인이 회개치 않으면 그분이 칼을 갈고, 불붙은 화살을 쏘려고 활을 팽팽히 당기신다. 하나님의 모든 병기는 다 치명적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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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16 <br>
결국 다윗은 그의 대적이 그 뿌린 것을 거둘 것을 확 신했다. 그의 죄는 잉태, 임신, 출산, 죽음의 잘 알려진 과정을 따를 것이다. 대적은 먼저 시편 기자를 죽일 음모를 잉태한다. 곧이어 그는 악한 생각들을 임신한다. 그런 다음 모반 계략을 출산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되돌아간다. 그는 자기 자신의 덫에 걸리며, 시편 기자를 해하려고 꾸민 모든 잔해와 폭력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반전을 통해 그 자신의 머리로 돌아온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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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이러한 공평한 정의로 인해 다윗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여호와께 감사를 올리고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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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 :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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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이 위대하시다. 그와 대조적으로 인간은 가련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엄청난 영광과 존귀를 부여하셨다. 그 사실의 경이로움이 다윗으로 장려한 탄성을 발하게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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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br>
여호와의 위엄은 사람이 볼 눈만 있다면 만물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자연과학의 모든 영역은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증거로 충만하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다. 행성과 별과 무한한 우주공간은 하나님이 실로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부분적으로 보 여줄 뿐이다. 그러나 왜곡된 인간들은 그 증거들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훌훌 떨구어버린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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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br>
그러나 순전한 믿음을 지닌 어린아이들은 단순한 찬양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부른다. 하나님이 그것을 슬기롭고 지혜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언하신 그대로이다(마 11:25). 우리가 ‘어린아이’를 문자 그대로 생각하든지, 아니면 그분을 어린아이처럼 믿는 주님의 제자들로 생각하든지 간에, 그들이 그분의 대적으로 인해 여호와를 위한 성채(城砦)를 이루고 있음이 여전히 사실이다. 그들은 종종 순전한 질문 내지 천진난만한 관찰을 통해서 하나님의 대적을 잠잠케 할 수 있다. 큰 풍선을 터뜨리는데 작은 핀이면 족하듯이, 이러한 어린양의 순수한 제자들은 종종 창조와 섭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손길을 부정하는 자들의 오만한 허세를 땅에 떨어뜨린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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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br>
어떤 과학 분야도 천문학만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미미함을 명명백백하게 선언하지 못한다. 거리가 광년(光年, 빛의 1 년 간 여행 거리)으로 계산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문제의 요점을 잘 말해준다. 빛은 1초에 186,000마일을 달리고 1년은 3,150 만 초이므로, 빛이 1년 간 달리는 거리만 해도 무려 6조(兆) 마일이 나 된다! 그러나 어떤 별들은 지구에서 수십 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런 수치를 천문학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밤하늘을 응시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생각들에 사로 잡힌다. 달과 별이 그분의 손가락으로 만든 작품이라니! 무수한 은하수와, 우주의 광활한 거리와, 행성들을 궤도상에 아주 정확히 붙들고 있는 능력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은 한없이 움츠러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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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br>
상대적으로 말해서, 지구라는 행성은 우주의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러할진대 그 행성에 붙어있는 일개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개개의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심이 있으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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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br>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자신의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다. 하나님보다는 못하지만 인간은 지상의 다른 피조물들은 소유하지 못한 능력들을 하나님과 더불어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좋다고 선언되었으나, 인간 창조에 대한 평가는 “심히 좋다”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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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 <br>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인간은 각종 동물과 새와 물고기와 파충류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다. 인간의 지배 아래 놓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현재는 그러한 확실한 지배권을 누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히 2:5~9). 개가 사람에게 짖고, 뱀이 사람을 물고, 새와 물고기가 사람의 손길을 벗어 난다. 그것은, 죄가 아담을 통해 세상에 들어오자 인간은 그보다 하등한 피조물에 대한 절대 지배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분은 인간이 정녕 지배권을 소유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으며,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물이 지금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예수님(인간의 지배권을 마침내 회복시 키실 분)을 바라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셨을 때 인간으로서 인류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 다. 이제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고 계신다. 언젠가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스리기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다. 천년왕국에서, 첫째 아담에 의해 상실된 지배권이 마지막 아담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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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br>
이어서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이 새로운 감사로 함께 노래 할 것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 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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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 <br>
압박당하는 자의 부르짖음 <br>
히브리어 부제는 이 시를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노래한 다윗의 ‘식가욘’”이라고 밝히고 있다. F. W. 그랜트는 ‘식가욘’이란 단어가 기자가 열정적으로 몰입한 방랑시, 혹은 크고 열정적인 찬양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송시(訟詩)의 대상인 ‘구시’ 는 사울과 같은 지파 출신으로서 아마도 그의 부관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다윗의 사악한 대적이었다. NKJV는 ‘식가욘’을 ‘묵상’이라고 옮겼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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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호소를 통해 다윗은 추적자에게서 건져달라고 기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사자의 공격을 받아 찢긴 무력한 새끼 양처럼, 절뚝거리고 기진할 것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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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는 아마도 사울의 생명을 해하려하고 그 물자를 약탈하려 한다는 죄목을 포함한 긴 죄목으로 다윗을 비난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는 그런 죄를 범치 않았다. 그의 손은 약탈을 한 적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사울 왕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실제로 그런 일을 행했다면 그는 기꺼이 응분의 책임(쫓기고 사로잡히고 짓밟히고 죽임을 당함)을 지고자 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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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8 <br>
그러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그는 담대히 여호와께 진노로 일어나 대적을 징벌하고 무고한 자를 변호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이 큰 재판을 집행하시는 모습을 묘사한다. 큰 무리가 법정에 모였다. 여호와께서 재판 자리에 앉아 민족들을 재판하신다. 다윗이 구하는 바는, 다만 그 자신의 의와 성실함을 따라 재판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교만한 요청처럼 들릴 수 있으나, 우리는 다윗이 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퍼부어지는 고소들에 대해서만 의를 주장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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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절은 하나님의 압제받는 백성들의 오랜 부르짖음을 보여준다. 모든 경건한 심령은 죄악의 다스림이 끝나고 의인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실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사이에, 인간의 생각과 동기를 아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정직한 자와, 매일 악인에게 분노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의 방패 혹은 보호자가 되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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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13 <br>
하나님은 훌륭한 병기고가 있으시다. 악인이 회개치 않으면 그분이 칼을 갈고, 불붙은 화살을 쏘려고 활을 팽팽히 당기신다. 하나님의 모든 병기는 다 치명적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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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윗은 그의 대적이 그 뿌린 것을 거둘 것을 확 신했다. 그의 죄는 잉태, 임신, 출산, 죽음의 잘 알려진 과정을 따를 것이다. 대적은 먼저 시편 기자를 죽일 음모를 잉태한다. 곧이어 그는 악한 생각들을 임신한다. 그런 다음 모반 계략을 출산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되돌아간다. 그는 자기 자신의 덫에 걸리며, 시편 기자를 해하려고 꾸민 모든 잔해와 폭력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반전을 통해 그 자신의 머리로 돌아온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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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이러한 공평한 정의로 인해 다윗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여호와께 감사를 올리고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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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이 위대하시다. 그와 대조적으로 인간은 가련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엄청난 영광과 존귀를 부여하셨다. 그 사실의 경이로움이 다윗으로 장려한 탄성을 발하게 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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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위엄은 사람이 볼 눈만 있다면 만물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자연과학의 모든 영역은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증거로 충만하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다. 행성과 별과 무한한 우주공간은 하나님이 실로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부분적으로 보 여줄 뿐이다. 그러나 왜곡된 인간들은 그 증거들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훌훌 떨구어버린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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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순전한 믿음을 지닌 어린아이들은 단순한 찬양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부른다. 하나님이 그것을 슬기롭고 지혜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언하신 그대로이다(마 11:25). 우리가 ‘어린아이’를 문자 그대로 생각하든지, 아니면 그분을 어린아이처럼 믿는 주님의 제자들로 생각하든지 간에, 그들이 그분의 대적으로 인해 여호와를 위한 성채(城砦)를 이루고 있음이 여전히 사실이다. 그들은 종종 순전한 질문 내지 천진난만한 관찰을 통해서 하나님의 대적을 잠잠케 할 수 있다. 큰 풍선을 터뜨리는데 작은 핀이면 족하듯이, 이러한 어린양의 순수한 제자들은 종종 창조와 섭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손길을 부정하는 자들의 오만한 허세를 땅에 떨어뜨린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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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학 분야도 천문학만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미미함을 명명백백하게 선언하지 못한다. 거리가 광년(光年, 빛의 1 년 간 여행 거리)으로 계산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문제의 요점을 잘 말해준다. 빛은 1초에 186,000마일을 달리고 1년은 3,150 만 초이므로, 빛이 1년 간 달리는 거리만 해도 무려 6조(兆) 마일이 나 된다! 그러나 어떤 별들은 지구에서 수십 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런 수치를 천문학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밤하늘을 응시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생각들에 사로 잡힌다. 달과 별이 그분의 손가락으로 만든 작품이라니! 무수한 은하수와, 우주의 광활한 거리와, 행성들을 궤도상에 아주 정확히 붙들고 있는 능력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은 한없이 움츠러든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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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말해서, 지구라는 행성은 우주의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러할진대 그 행성에 붙어있는 일개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개개의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심이 있으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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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자신의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다. 하나님보다는 못하지만 인간은 지상의 다른 피조물들은 소유하지 못한 능력들을 하나님과 더불어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좋다고 선언되었으나, 인간 창조에 대한 평가는 “심히 좋다”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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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인간은 각종 동물과 새와 물고기와 파충류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다. 인간의 지배 아래 놓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현재는 그러한 확실한 지배권을 누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히 2:5~9). 개가 사람에게 짖고, 뱀이 사람을 물고, 새와 물고기가 사람의 손길을 벗어 난다. 그것은, 죄가 아담을 통해 세상에 들어오자 인간은 그보다 하등한 피조물에 대한 절대 지배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분은 인간이 정녕 지배권을 소유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으며,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물이 지금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예수님(인간의 지배권을 마침내 회복시 키실 분)을 바라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셨을 때 인간으로서 인류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 다. 이제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고 계신다. 언젠가 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다스리기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다. 천년왕국에서, 첫째 아담에 의해 상실된 지배권이 마지막 아담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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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이 새로운 감사로 함께 노래 할 것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 다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