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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시편55-56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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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5월 10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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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55-56편 연구

55편 : 네 짐을 맡겨 버리라 

아히도벨은 다윗의 가장 믿을 만한 조언자 중 하나였으나 후에 변절하여 찬탈자인 압살롬의 측근이 되었다. 이 시에서 우리는 그러한 충격을 받은 다윗의 마음의 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유다에게 배신당하신 구주 예수님의 영혼의 쓰라린 아픔도 엿보게 된다. 아울러 이 시는 장차 올 적그리스도의 음모 아래 고통 당하는 잔존자들의 기도를 미리 보여준다.

55:1~2(상) 

절망에 처한 영혼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 만한 다양 하고도 독특한 접근방법을 지니게 마련이다. 적극적으로는 “귀를 기울이시고”라는 요청이 있다. 소극적으로는 “숨지 마소서”라는 호소가 있다. “내게 주의 하소서(굽히소서)”라는 경청을 바라는 호소와, “응답 하소서”라는 행동을 바라는 호소가 있다.

55:2(상)~5

 이어서 개인적인 상황과 절실한 필요를 일일이 밝히고 있다. 근심으로 편치 못하며 탄식하다. 원수의 소리와 압제를 당하다. 죄악의 짐으로 눌림 당하다. 노하여 핍박함을 당하다. 마음이 속에서 심히 아파하다. 사망의 위험이 미치다. 두려움과 떨림이 이르다. 황공함(두려움)에 압도당하다.

55:6~8 

그의 우선적인 바램은 그 모든 환란을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만일 날개가 있다면 광야의 한적한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그는 그의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광풍을 속히 피하고 싶었다.

55:9(상) 

그러나 이제 그의 두려움은 타오르는 분노로 바뀐다. 그는 음모자들의 강포로 심히 격분하여 여호와께(그들을 멸하라는 것인지 그들의 계획을 멸하라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멸하시라고 호소한다(우리말 성경은 ‘저들을 멸하소서’라고 대상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그들의 혀를 나누시라고 하나님께 구한다. 이것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는 다윗의 기도를 암시하는 듯하다(삼하 15:31).

55:9(하)~11 

이새의 아들이 자신이 정복하고 택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니 강포와 분쟁으로 가득 찼다. 주야로 그 두 가지 악이 성 주변과 성 위에 쌓였다. 평화의 성이 이제 죄악과 잔해함의 성으로 전락했다. 악독이 그 가운데 있고 압박과 궤사가 정의와 공평이 있어야 할 거리를 떠나지 않았다.

55:12~15

 다윗의 분노의 중심에는 물론 매정하게 배신당한 아픔이 있다. 만일 그 배신자가 공공연한 원수였다면 그 고통이 다소 견딜 만했을 것이다. 만일 그 조롱과 모욕이 노골적인 대적으로부터 왔다면 시편 기자는 그러한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름아닌 그의 동료, 사랑하고 신뢰하는 그의 친구가 그를 등뒤에서 찌른 것이다. 함께 성막의 뜰을 거닐며 달콤한 사귐을 나누던 들 중 하나가 그를 대적한 것이다. 그 사람과 그 추종자들의 배신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여 속히 음부로 내려가는 것이 마땅한데,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마음 깊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Gelineau).

55:16~21

 그러나 그러한 감정적인 혼란 중에서도 다윗은 기도의 응답으로 도움이 올 것을 확신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하나님께 올려지는 근심과 탄식이 구주의 귀에 이를 것이다. 그를 대적하여 진친 자들의 수적인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평화를 분깃으로 취하고 나아올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영원히 보좌에 앉아 계신 그분이 듣고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55:22 

이 시의 절정은 이 22절이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기자는 환란 때의 최선의 방책은 환란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그 짐을 맡겨 버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55:23 

살인과 속임을 일삼는 자들은 일찍, 험악하게 죽을 것이다. 아히도벨이 그러했고(삼하17:14,23), 유다도 그러했다(마 27:5).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구원을 의지할 수 있다.


56편 :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 

다윗이 그의 동족을 피해 가드의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서 도피처를 찾아야 했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삼상21:10~15; 27: 4; 29:2~11). 그러나 사울 왕의 맹렬한 대적으로 인해 그는 그 지경에까지 이르렀다(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56편은 그 당시 두려움과 믿음사이를 오가던 그의 마음을 묘사해준다.

56:1~2 

그는 그를 뒤쫓는 자들의 끊임없는 압박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한다. 그 대적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종일 밀려드는 세 가지 두려움을 주목하라. “…압제하나이다”(1절). “나의 원수가…나를 삼키려 하며”(2절).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5절). 그의 원수들이 오만하게 그를 치고, 끊임없이 그에 대해 악을 도모하고, 손을 잡고 힘을 합치고, 그를 덮치려 잠복하고, 계속해서 그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2,5,6절). 

56:3 

그러나 믿음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는 확신에 찬 선언과 함께 근심의 구름을 제거한다. 델리취가 표현한, 그러한 “도피자의 활기찬 패기”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약속의 신실하심에 기초한다. 그분은 모든 대적을 합친 세력보다 더 강하시며, 아울러 그분은 해를 당하지 않게 우리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의 허용적인 뜻 외에는 아무것도 그분이 우리 주위에 두르신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56:4~6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는 담대한 도전에 대해, 우리의 이성(理性)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지. 핍박하고 상해하고 불구로 만들고 그리고 아예 쏴 죽일 수도 있지”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의 일이 끝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다윗의 담대함을 우리 구주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56:7

 그를 죽이려는 대적들의 집요한 시도를 묘사한 뒤에 다윗은 하나님께 그들을 분노 중에 낮추사 그들의 악행을 갚아달라고 호소 한다.

56:8 

여기에 우리 주님의 부드럽고 친근한 돌보심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있다. 그분은 우리의 유리함, 혹은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몸짓을 계수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의 눈물조차 세세히 헤아리시는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눈물을 그분의 병에 담아 달라고 구할 수 있다. 이것은 애도하는 자들의 고대 풍습, 즉 그들의 떨어 지는 눈물을 작은 병에 담아 죽은 친구의 무덤에 두어 살아남은 자 들의 애정을 기념하는 풍습을 암시해줄 수 있다. 

56:9

 다윗과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대적을 물러나게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능히 대적하겠는가?(롬 8:31). “궁극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는 오직 하나다. 다른 모든 것은‘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가?’라는 이 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 들이다. 다윗은 마침내 하나님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56:10~11

4절의 후렴구가 10,11절에 되풀이되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다른 두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엘로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YHWH)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엘로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기자는 그분의 보호의 손길을 온전히 확신한 가운데, 그리고 나약한 인간이 그를 해하기에 무능함을 비웃으며 전능하신이요 언약을 지키시는 이의 약속을 찬송한다.

56:12~13 

장래의 구원에 대한 현재의 확신으로 인해 다윗은 여호와께 한 서원을 이루고 그분께 진 감사의 빚을 갚겠다고 고백한다. 여전히 적진 가운데 있으면서 그는 완전한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빛안에서 계속 다닐 수 있도록 그의 생명이 건짐을 받고 그의 발이 실족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