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공부 시편 61-62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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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5월 13일 2021년본문
시편 61-62편 연구
61편 : 나보다 높은 바위
다윗은 여호와와 놀라운 관계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이런 분이셨다. “믿음의 눈에는 어떤 지상의 것보다 더 많이 보이고 어떤 가까운 지상의 결속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고 더 친근한 살아있는 빛나는 실재이시다.” (작자 미상). 특히 위험한 때에,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그는 그의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는 법을 배웠다. 여기서 그는 또 한 번의 아슬아슬한 위기에 처해 있다. 상황의 압박이 그의 마음을 눌러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고 명료한 기도가 흘러 나오게 했다. 이것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핍박과 번민과 고통 중에 발하는 영원한 고백이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61:1
다윗의 친근한 음성이 만유의 주재되신 분의 보좌에 들려온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은 기쁘다. 그분의 종의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만유의 주재에게 즉시 열납된다.
61:2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편 기자는 문자적으로 땅 끝에 있지 않다. 그는 문자적으로, 안전과 구원이 요원해 보이고 삶이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했으나, 그러나 은혜의 보좌가 유일한 탈출구임을 알기에 그는 긍휼을 얻고 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그곳으로 나아간다. “기도에 있어 거리는 아무 의미 없으며, 어떤 극한 상황도 기도의 장벽이 될 수 없다”고 혹자는 말한 바 있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진정한 영적인 본능은, 보호받기 위해서는 반석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반석은 그보다 더 높아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곳에 이르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윗에게 가르쳐주었다. 물론 여호와께서 그 반석이시다(삼하 22:32).
61: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반석이심을 확증해준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신뢰할 만한 피난처요 의인이 달려가 안전을 얻을 수 있는 견고 한 망대이심을 이미 입증해왔다(잠 18:10).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그 분은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하는데 실패할 리가 없다! 그러한 친근한 사랑과 단순한 신뢰는 결코 거절당할 수 없다. 하나님이 다윗을 가리켜 그분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삼상 13:14). “주의 날개 밑”이란 표현은 피 뿌린 속죄 소를 덮은 그룹의 날개를 가리킨 표현일 것이다.
61:5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기업’ 혹은 유업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가나안 땅(출 6:8), 이스라엘 백성(시 94:5), 하나님의 말씀(시 119:111), 가정의 자녀(시 127: 3), 해를 당하지 않음(사 54:17), 성막 내지 성전(렘 12:7) 등에 사용 되었다. 그 중 마지막이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우선적인 의미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앞 구절이 하나님의 장막을 언급하고 그룹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의 기업을 영생으로 생각할 수 있다(골 1:12).
61:6~7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그 나이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흥미롭게도, 이 두 구절에서 다윗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한다. 그는 이제까지 분명히 그 자신과,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맺으신 언약(삼하7장)에 대해 말해온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다른 왕(King)을 가리키는 듯 보인다. 만일 우리가 본문을 다윗에게 적용한다면, 본문은 다윗 자신의 장수와 그의 나라의 장구함을 요청하는 내용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 적용한다면 본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된다. * 그분의 생명이 핍박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연장되었다(히 7:16). * 그분의 연대는 모든 세대에 미칠 것이다(히 1:12). *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좌정하실 것이다(히 1:8). * 변하지 않는 사랑과 진실하심이 호위병처럼 그분을 두루 보호할 것이다(시 91:1~16). 탈굼에 나오는 고대 유대인의 해설도 본문이 왕 메시야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61: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이와 같이, 극한 상황으로 시작된 이 시는 평온하게 마감한다. 다윗은 자신보다 높은 반석에 이르렀으며, 이제 기쁜 나머지 여호와를 계속 찬양하고 경배와 사랑과 섬김의 서원을 갚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고난이 압박하면 여러 가지 서원을 하다가 고난이 지나가면 쉬 잊어버리는 그런 자들과 같지 않다. 그는 “기도에는 껑충 뛰고 찬양에는 절뚝거리는” 자가 아니다. 이 61편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찬송시에 영감을 주었다. “때로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목적지까지 길이 거칠어 보이고 때로 큰 슬픔이 광풍처럼 영혼을 엄습할 때!
62편 : 하나님만 바람이여!
62편의 메시지는 하나님만이 참된 피난처라는 것이다. ‘오직’ (only), ‘…만이’(alone)라는 표현의 반복은 우리의 온전하고 나뉨 없는 신뢰에 대한 그분의 배타적인 권리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다음의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의 구원의 근원(1,2,6,7절).
우리의 반석(2,6,7절).
우리의 산성(2,6절)
우리의 영광(7절).
우리의 피난처(7,8절).
능력의 근원(11절).
인자함의 근원(12절).
하나님을 신뢰와 능력의 근원으로 삼는 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2절).
대적을 담대히 꾸짖는다(3절).
대적의 계획과 전략을 간파할 수 있다(4절).
흔들리지 않는다(4절).
다른 이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쁨을 알기를 원한다(8절).
사람들이 종종 신뢰하는 다섯 가지 다른 대상이 있는데 그러한 신뢰는 반드시 실패한다.
(1) 천한 자, 즉 일반 백성은 입김처럼 잠시 있다 사라진다.
(2) 높은 자는 방백이든 부유한 자든, 도움과 안전을 줄 듯 하나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거짓되다. 천한 자든 지혜 있는 자든 저울에 올려보면 너무 가벼워 믿을 만하지 못하다.
(3) 학대는 의지할 만하지 못한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냄새를 풍긴다.”
(4) 탈취는 권력과 부를 얻는 지름길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릇 되이 얻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5) 정직하게 수고해서 얻은 부도 여호와 대신 우리의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F. B. 메이어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과 돈의 도움을 구하며 헛수고하는지,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아마도 이 시는 압살롬의 반역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반역자 들은 다윗을 마치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뒤흔들어 놓았다. 그들의 목표는 그를 높은 위, 즉 왕위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충성을 보이는 체하며 음모를 꾸몄다. 도피중인 왕은 그의 충성스러운 신복들에게 요동하지 말고 계속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권면한다. 그의 대적은 사람과 돈을 의지하고 있었으나 거기에는 구원이 없었다. 그 자신의 신뢰는 여호와께 있었다. 거듭해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능력과 사랑의 근원이라고 그에게 확신을 주셨다. 그분의 능력은 신실한 자를 구원하고 대적을 멸하는데 사용되며,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백성을 위로하고 축복하는데 사용된다. 그는 그분의 은혜를 거절하는 모든 자에게 공의가 시행되는 것을 목도할 것이다. 이 시에 대해 존 도니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글을 지었다. “그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요 나의 산성이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영광이라. 그가 나의 피난처니 어떤 대적이 나를 쫓으리요? 그가 나의 산성이니 어떤 유혹이 나를 꾀리요? 그가 나의 반석이니 어떤 폭풍이 나를 흔들리요? 그가 나의 구원이니 어떤 슬픔이 나를 낙심케 하리요? 그가 나의 영광이니 어떤 비난이 나를 욕되게 하리요?”
61편 : 나보다 높은 바위
다윗은 여호와와 놀라운 관계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이런 분이셨다. “믿음의 눈에는 어떤 지상의 것보다 더 많이 보이고 어떤 가까운 지상의 결속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고 더 친근한 살아있는 빛나는 실재이시다.” (작자 미상). 특히 위험한 때에,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그는 그의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는 법을 배웠다. 여기서 그는 또 한 번의 아슬아슬한 위기에 처해 있다. 상황의 압박이 그의 마음을 눌러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고 명료한 기도가 흘러 나오게 했다. 이것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핍박과 번민과 고통 중에 발하는 영원한 고백이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느끼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61:1
다윗의 친근한 음성이 만유의 주재되신 분의 보좌에 들려온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은 기쁘다. 그분의 종의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만유의 주재에게 즉시 열납된다.
61:2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편 기자는 문자적으로 땅 끝에 있지 않다. 그는 문자적으로, 안전과 구원이 요원해 보이고 삶이 끝나고 죽음이 시작되는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했으나, 그러나 은혜의 보좌가 유일한 탈출구임을 알기에 그는 긍휼을 얻고 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그곳으로 나아간다. “기도에 있어 거리는 아무 의미 없으며, 어떤 극한 상황도 기도의 장벽이 될 수 없다”고 혹자는 말한 바 있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진정한 영적인 본능은, 보호받기 위해서는 반석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반석은 그보다 더 높아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곳에 이르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윗에게 가르쳐주었다. 물론 여호와께서 그 반석이시다(삼하 22:32).
61: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이 반석이심을 확증해준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신뢰할 만한 피난처요 의인이 달려가 안전을 얻을 수 있는 견고 한 망대이심을 이미 입증해왔다(잠 18:10).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그 분은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하는데 실패할 리가 없다! 그러한 친근한 사랑과 단순한 신뢰는 결코 거절당할 수 없다. 하나님이 다윗을 가리켜 그분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삼상 13:14). “주의 날개 밑”이란 표현은 피 뿌린 속죄 소를 덮은 그룹의 날개를 가리킨 표현일 것이다.
61:5
“하나님이여, 내 서원을 들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의 얻을 기업을 내게 주셨나이다.” ‘기업’ 혹은 유업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가나안 땅(출 6:8), 이스라엘 백성(시 94:5), 하나님의 말씀(시 119:111), 가정의 자녀(시 127: 3), 해를 당하지 않음(사 54:17), 성막 내지 성전(렘 12:7) 등에 사용 되었다. 그 중 마지막이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우선적인 의미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앞 구절이 하나님의 장막을 언급하고 그룹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의 기업을 영생으로 생각할 수 있다(골 1:12).
61:6~7
“주께서 왕으로 장수케 하사 그 나이 여러 대에 미치게 하시리이다.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흥미롭게도, 이 두 구절에서 다윗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한다. 그는 이제까지 분명히 그 자신과,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맺으신 언약(삼하7장)에 대해 말해온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다른 왕(King)을 가리키는 듯 보인다. 만일 우리가 본문을 다윗에게 적용한다면, 본문은 다윗 자신의 장수와 그의 나라의 장구함을 요청하는 내용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 적용한다면 본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된다. * 그분의 생명이 핍박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연장되었다(히 7:16). * 그분의 연대는 모든 세대에 미칠 것이다(히 1:12). *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좌정하실 것이다(히 1:8). * 변하지 않는 사랑과 진실하심이 호위병처럼 그분을 두루 보호할 것이다(시 91:1~16). 탈굼에 나오는 고대 유대인의 해설도 본문이 왕 메시야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61:8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 이와 같이, 극한 상황으로 시작된 이 시는 평온하게 마감한다. 다윗은 자신보다 높은 반석에 이르렀으며, 이제 기쁜 나머지 여호와를 계속 찬양하고 경배와 사랑과 섬김의 서원을 갚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고난이 압박하면 여러 가지 서원을 하다가 고난이 지나가면 쉬 잊어버리는 그런 자들과 같지 않다. 그는 “기도에는 껑충 뛰고 찬양에는 절뚝거리는” 자가 아니다. 이 61편은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찬송시에 영감을 주었다. “때로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목적지까지 길이 거칠어 보이고 때로 큰 슬픔이 광풍처럼 영혼을 엄습할 때!
62편 : 하나님만 바람이여!
62편의 메시지는 하나님만이 참된 피난처라는 것이다. ‘오직’ (only), ‘…만이’(alone)라는 표현의 반복은 우리의 온전하고 나뉨 없는 신뢰에 대한 그분의 배타적인 권리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다음의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의 구원의 근원(1,2,6,7절).
우리의 반석(2,6,7절).
우리의 산성(2,6절)
우리의 영광(7절).
우리의 피난처(7,8절).
능력의 근원(11절).
인자함의 근원(12절).
하나님을 신뢰와 능력의 근원으로 삼는 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2절).
대적을 담대히 꾸짖는다(3절).
대적의 계획과 전략을 간파할 수 있다(4절).
흔들리지 않는다(4절).
다른 이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쁨을 알기를 원한다(8절).
사람들이 종종 신뢰하는 다섯 가지 다른 대상이 있는데 그러한 신뢰는 반드시 실패한다.
(1) 천한 자, 즉 일반 백성은 입김처럼 잠시 있다 사라진다.
(2) 높은 자는 방백이든 부유한 자든, 도움과 안전을 줄 듯 하나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거짓되다. 천한 자든 지혜 있는 자든 저울에 올려보면 너무 가벼워 믿을 만하지 못하다.
(3) 학대는 의지할 만하지 못한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냄새를 풍긴다.”
(4) 탈취는 권력과 부를 얻는 지름길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릇 되이 얻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5) 정직하게 수고해서 얻은 부도 여호와 대신 우리의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F. B. 메이어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과 돈의 도움을 구하며 헛수고하는지,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아마도 이 시는 압살롬의 반역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반역자 들은 다윗을 마치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뒤흔들어 놓았다. 그들의 목표는 그를 높은 위, 즉 왕위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충성을 보이는 체하며 음모를 꾸몄다. 도피중인 왕은 그의 충성스러운 신복들에게 요동하지 말고 계속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권면한다. 그의 대적은 사람과 돈을 의지하고 있었으나 거기에는 구원이 없었다. 그 자신의 신뢰는 여호와께 있었다. 거듭해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능력과 사랑의 근원이라고 그에게 확신을 주셨다. 그분의 능력은 신실한 자를 구원하고 대적을 멸하는데 사용되며,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백성을 위로하고 축복하는데 사용된다. 그는 그분의 은혜를 거절하는 모든 자에게 공의가 시행되는 것을 목도할 것이다. 이 시에 대해 존 도니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글을 지었다. “그는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요 나의 산성이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영광이라. 그가 나의 피난처니 어떤 대적이 나를 쫓으리요? 그가 나의 산성이니 어떤 유혹이 나를 꾀리요? 그가 나의 반석이니 어떤 폭풍이 나를 흔들리요? 그가 나의 구원이니 어떤 슬픔이 나를 낙심케 하리요? 그가 나의 영광이니 어떤 비난이 나를 욕되게 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