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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시편 89-90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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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6월 02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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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9-90편 연구

89편 : 하나님이 다윗과 더불어 맺은 언약

89:1~2
서두에서 에단은 다윗 언약에서 표현된 여호와의 변치 않는 사랑과 신실하심에 그 자신의 개인적인 기쁨을 선포한다. 그는 그것이 영원히 견고한 까닭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89:3~4
믿음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이 다윗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하나님께 상기시킨다. 다윗이 그분의 택한 종이기에 그 분은, 그가 그 위를 이을 후사가 없지 않을 것이며, 그의 나라가 대대로 지속될 것이라고 맹세하셨다. 끊이지 않는 왕조가 영원한 보좌에 앉을 것이다!

89:5
이어서 믿음은 그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의 기사(奇事)를 재 진술한다. 마치 에단이 여호와께, 그 이름의 영예가 달려있다고 상기시키고 있는 듯하다.

 89:6~8
그분은 하늘의 모든 천군보다 위대하시다. 천상의 존재들이 그분의 기사와 그분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도록 요청 받는다. 어떤 천사도 그분과 비교될 수 없다. 그분은 모든 천상의 존재 위에 뛰어나시다. 그들 중 큰 자들도 그분을 두려워하여 서있다. 그들은 그분이 모든 면에서 위대하심을 인정한다. 신실하심의 옷으로 두르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처럼 능한 자는 아무도 없다.

89:9~10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와 도덕적인 완전함에 있어 위대하시다(9~15절). 창조에 있어 그 분의 위대하심을 잘 보여주는 한 극적인 예는, 그분이 노한 바다를 다스리고 그 물결을 잠잠케 하시는 모습이다. 그분은 오래 전에 푸 른 갈릴리 바다에서 그 일을 행하셨으며, 그분의 백성의 풍랑 이는 삶을 끊임없이 잠잠케 하신다. 섭리에 있어 그분의 위대하심에 대해서는, 출애굽 때에 그분이 애굽(라합)을 굴복시키신 것보다 더 좋은 예가 있을까? 그분은 사자가 그 희생물을 덮치듯이 그 오만한 나라를 격퇴하셨다. 그분은 바람 앞에 낙엽처럼 대적들을 흩으셨다.

89:11~13
하늘과 땅은 그분이 창조하신, 그분의 것이다. 세계와 그 만물은 그분이 건설하셨기에 그분께 속했다. 남과 북은 그분께 기원을 둔다. 다볼산과 헐몬산은 그분을 그들의 창조주로 즐거이 인정하듯 그 머리를 높이 든다. 그분의 팔은 엄청난 능력이 있고 그 분의 손은 강하다. 그분의 오른손은 모든 것 위에 높으며, 모든 능력 위에 뛰어나다.

89:14
도덕적인 완전함에 대해서는, 그분의 보좌가 의와 공의의 두 원리 위에 세워진다. 인자함과 진실함이 그분이 가시는 곳마다 앞서 간다.

89:15~18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진술한 뒤에 에단은 이제 그분의 백성의 축복을 묘사한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즐거운 소리’는 종교력의 절기 동안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거닐며 외치는 축제의 환호였다. 우리에게, 그것은 항상 복음의 ‘기쁜 소리’일 것이다. 그 행복한 사람들에 관해 여러 가지 사실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그분의 얼굴 빛 가운데 다닌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분의 은총 아래 다니며 그분의 임재에 의해 인도된다. 그들은 그분 안에서 모든 기쁨의 근원을 발견하며 그분의 의를 즐거워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그분의 능력만을 자랑한다. 오직 그분의 은총을 통해서만 그들의 뿔이 높여진다. 다시 말해서, 그 은총을 통해서만 그들이 강해진다. “우리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

89:19
그리고 그것은 에단을, 여호와께서 다윗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으로 인도한다(19~37절). 여러 해 전에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그분의 신실한 자에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자’(우리말 성경에는 ‘성도’로 되어 있음)는 사무엘이나(삼상 16:1~12) 나단이나(삼하 7:1 ~17) 아니면 여호와의 종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다. 그 분은 무조건적인 은혜 언약을 맺고, 강한 자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그리고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이셨다. 다윗에 대한 이러한 묘사에서,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다윗을 넘어 장차올 메시야-왕을 바라보게 된다.

 89:20~24
여호와께서는 그의 형제들 중에서 다윗을 택하셨으며, 사무엘을 통해서 왕을 세우는데 사용되는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으셨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손이 영원히 다윗과 그 위를 이을 자 위에 있어 그들을 보존하고 보호할 것이며, 그분의 팔이 모든 필요한 힘을 공급할 것을 보장했다. 왕의 대적들이 왕을 이기지 못할 것이며, 악한 자들도 왕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왕의 대적을 물리치고,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징벌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왕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다윗의 집은 그분에게서 능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89:25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대로(창 15:18), 그 나라의 최종적인 경계는 지중해에서 유브라데 강까지 미칠 것이다. 창세기 15장에서는 애굽 강에서 유브라데 강까지라고 말하고 있으나, 애굽 강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기에 경계는 마찬가지다.

89:26~27
다윗은 여호와를 그의 아버지, 그의 하나님, 그의 피 할 바위로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그분의 장자, 세상 열왕의 으뜸으로 삼으실 것이다. ‘장자’란 표현은 때로,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은 경우처럼(눅 2:7) 시간상의 첫째를 의미한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엔 이새의 말째 아들인 까닭에 그런 의미일 리가 없다. 여기서는 “세상 열왕의 으뜸”이라고 27절에 표현된 대로 지위 내지 영예상의 첫째를 의미한다. 이것이, 바울이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만물의 으뜸”이라고 표현할 때 의미한 바이다(골 1:15). 그것은 어떤 이단들의 가르침대로 예수께서 첫 피조물이란 의미가 아니라 그분이 만물 위에 뛰어나시다는 의미이다.

89:28~29
그 언약은 다윗의 자손이 범죄할 때 징벌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율법을 조금이라도 범하면 공의롭게 치리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그대로 이뤄졌다. 다윗의 후손은 여호와께 신실치 못했으며,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포로라는 막대기와 채찍으로 그들을 징벌하셨다.

89:30~32
다윗의 자손이 범죄할 때 언약이 그들을 징벌에서 면케 해주지 못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규례를 범하면 공의로 처벌될 것이다. 그런 일이 역사적으로 그대로 일어났다. 다윗의 후손들은 여호와께 신실치 못했으며,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포로라는 지팡이와 채찍으로 그들을 징벌하셨다.

89:3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나라가 얼마간 사라지고 예루살렘에 아무 다스리는 왕이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왕의 후손을 기적적으로 보존하고 계셨으며, 그분의 때가 되면 그 나라를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89:34~37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하나님은 그 언약이 폐해질 수 없음과 다윗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되풀이하셨다. 다윗의 계보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그의 위는 해와 달이 하늘에 있는 동안 지속될 것이다.

89:38~39
외관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이 다윗 언약을 잊으신 듯했다.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해 포로로 끌려갔다. 그 날부터 이 제까지 아무도 다윗의 위에 앉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 약 2천 년 전에 주 예수께서 다윗의 왕도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요셉의 양아들이셨으며, 그리고 요셉은 유다 열왕의 직계였기에 예수님은 그를 통해 다윗의 위를 이을 법적인 권리를 상속받으셨다(마1장). 예수님은 마리아의 ‘실제 아들’이셨고, 그리고 마리아는 나단을 통한 다윗의 후손이었기에 우리 주님은 다윗의 후손에 속하셨다(눅 3:23~38). 요컨대 그 언약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같이 성취되었다. 다윗의 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히 보존되었으며, 그리고 그분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사시기에 그 위를 이을 다윗의 후손이 항상 있게 될 것이다.

89:40~45
예루살렘 성벽은 구멍이 뚫리고 성루들은 무너져 내렸다. 그 성을 지나는 여행자들이 마구 전리품을 취했으며, 사이가 좋지 않던 이웃 나라들이 유다의 곤경을 비웃었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오른손을 높이 들고 그들의 승리를 기뻐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무기는 전쟁에서 무용지물로 입증되었으며 그 군대는 도저히 대적을 감당할 수 없었다. 왕은 폐위되고 그의 보좌는 파괴되었다. 수치와 모욕으로 덮인 채 그는 때이르게 노인이 되어버렸다.

89:46~48
언약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에게서 몸을 숨기신 듯했다. 그들을 향한 그분의 진노는 불처럼 타올랐다. “언제까지?”라는 애처로운 호소가 하늘로 올라갔다. 에단은 하나님께, 그분이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짧게 정하셨으며, 인간은 얼마나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기억해달라고 구했다. 자기 때가 되면 모든 인간은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음부의 권세가 마침내 그를 이길 것이다. 우리는 에단보다 더 나은 소망이 있다. 우리는 모두 다 죽을 것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그분의 교회를 하늘 본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실 때 모두 변화될 것을 알고 있다(고전 15:51; 살전 4:13~18).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구약 성도들에게는 비밀이었다.

89:49~51
에단의 간청은 매우 담대하고 절박했다. 그는 하나님이 강력한 표현으로 다윗에게 보장하신 인자하심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적의 조롱과 조소에 매우 민감했다. 어떻게 그들이 에단 자신을 모욕하고 쫓겨나는 왕을 조롱할 수 있는가!

89:52
그러나 마지막 구절에서 믿음이 승리한다. 에단은 그의 의문에 대한 답은 알지 못했지만 여전히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주여, 나는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믿나이다”라고 말 하는 듯하다. 그는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이라는 환희에 찬 고백으로 그의 기도를 마감했다.

제4권 (90~106편)

90편 : 죽음의 종소리

이 시를 설명하기 위해 한번 건전한 상상력을 동원해보겠다. 무대는 시내광야이다. 정탐꾼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돌아와 악한 보고를 한지 여러 해가 지났다. 백성들은 아무런 진전이 없이 여전히 광야를 배회하고 있다. 아무 소득 없는 고된 방황이었다. 아침마다 전령이 새로운 재난 소식을 가지고 모세의 장막을 찾아온다. 사망, 사망, 사망, 또 사망. 장례식이 가장 흔한 소식이며, 광야는 넓직한 공동묘지와 다를 바 없다. 백성들이 진을 거둘 때마다 그 뒤에는 또 하나의 장지(葬地)가 남는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완전히 탈진했다. 엄청난 사망자 수에 압도되어 그는 장막에 들어가 땅에 엎드려 이렇게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한다.

90:1~2
그렇게 쉬 변하고 쉬 사라지는 많은 것들 속에서 그는 먼저 여호와의 영원성 안에서 안도감을 찾는다. 다른 모든 것은 쇠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변치 않는 본향이요 피난처시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분은 ‘그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과 공의와 인자와 진리에 있어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하나님이시다.

90:3~4
하나님의 다함 없는 연대와 인생의 짧음은 극히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발하시며, 끝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행렬이 무덤으로 터벅터벅 발길을 옮기고 있다. 영원하신 분에게는, 타락한 인간의 최초의 수명인 1천년은 과거의 기억이나 밤의 한 경점에 지나지 않는다.

90:5~6
모세에게 조차도 인생은 잠을 자는 것처럼 덧없어 보인다.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일어난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을 거의 기억할 수 없다. 달리 표현해서, 인생은 풀과 같아서 아침에 신선하고 푸르다가 저녁이면 시들고 말라버린다. 스펄젼의 표현대로 인생은 ‘심겨지고, 자라고, 바람에 불려가고, 베어지고, 사라진다.’

90:7~10
모든 죽음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결과인 한편, 모세는 광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이 특별히 개입하신 결과임을 알고 있었다. 애굽을 떠날 때 20세 이상이었던 모든 군사가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죽을 것이다. 죽음의 종소리는, 그분의 백성이 갈렙과 여호수아의 격려를 듣고 가나안에 진격하는 대신 불신하는 정탐 군들 편에 선 까닭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시는 증표이다. 그들의 죄악과 은밀한 죄가 항상 그분 앞에 있어서 그분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의 진노의 어두운 구름 아래 거하며, 그분의 분노의 물결에 압도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70년을 할당받아 살고, 어떤 이들은 80년을 할당받아 산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수고와 슬픔뿐이다. 질병에 질병이 이어진다. 극히 적은 일도 힘들어진다. 그리고 곧 맥박이 멈추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다.

90:11~12
하나님의 사람은 분노 중에 일어나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두려워 떤다. 그분의 진노의 엄청남을 생각할 때 누가 그분을 마땅히 두려워할 만큼 두려워할 수 있을지 그는 의아해한다. 이러 한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의 삶을 돌아보고, 하루 하루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영원히 계산될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도록 자극을 준다.

90:13~14
모세는 여호와께 그분의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간구한다. 그분의 진노가 영원히 타오르겠는가? 그분이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아침에 그분의 인자로 그들을 만족케 하사 그들의 남은 날들을 평온하고 행복하게 보내게 하기를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90:15~16
이제 모세는 ‘동등한 시간’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목도한 곤고와 환란의 햇수만큼 기쁨의 햇수를 주실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미 그분의 능력이 심판을 통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제 그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얼굴의 다른 측면, 즉 은혜의 행위를 보여주실 것을 구한다.

90:17
끝으로, 중재자는 여호와께 그분의 택한 지상 백성에게 은총을 보이시고 그들로 그 수고하는 일에 열매를 거두게 해주실 것을 구한다.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전통적으로 시편 90편은 그리스도인의 장례식 때 즐겨 읽혀져 왔다. 그리고 그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 시는, 인생의 짧음과 시간 내지 기회를 사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는 신약시대에 있어서 위로와 확신을 주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 우리는 죽는 것은 얻는 것임을 안다. 죽는 것은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본향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 대한 어둡고 침침한 전망은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소망에 대한 기쁨과 승리로 대치되어야 한다. 이제 사망은 그 쏘는 것을 잃었고 무덤은 그 승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신자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 “사망이 폐해졌네! 믿는 자여, 즐거이 외치라. 무덤이 자랑하던 승리는 어디 갔는가? 예수께서 살아 계시네! 더 이상 그 무덤 입구는 쓸쓸하지 않네. 예수께서 살아 계시네! 강하고 능하신 구원자가 살아 계시네.” (파니 J. 크로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