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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시편113-114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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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6월 18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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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113-114편 연구

113편: 그렇게 위대하시면서 그렇게 은혜로우신 분

 113:1~6
1절부터 5절은 하나님을 ‘무한히 높으신’ 분으로 제시 하며, 6절부터 9절은 하나님을 ‘매우 가까이 계신’ 분으로 제시한다. 우리 하나님은 무한히 높으시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분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시다.
누구에게? 그분의 모든 종들에게(1절).
어떻게? 그분의 이름을 송축함으로(그분의 어떠하심으로 인해 그분께 감사하는 것을 의미함; 2절).
얼마나 자주? 끊임없이-이제와 영원토록(2절).
어디서? 모든 곳에서-해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3절).
무엇 때문에? 그분의 위대하심으로 인해.
그분은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다(4절). 그분의 비할 데 없으심으로 인해. 아무도 높은 위에 앉으신 그분과 비교될 수 없다(5절). 그분의 무한한 살피심으로 인해. 천지에 그분이 보지 못하시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6절). 6절은 그분이 ‘하늘에 있는 것’을 살피기 위해서도 스스로 낮추셔야 한다 고 암시해준다! 그러나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무한히 높으신 그분이 또한 심히 가까이 계신다.

113:7~9
가난한 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분이 그들을 진토에서 일으키신다. 궁핍한 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분이 그들을 낮은데서 높이사 방백들과 함께, 땅의 높은 자들과 함께 앉히신다.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분이 그녀에게 가정을 허락하고 그녀로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신다. 불임 (不姙)은 유대 여자들 가운데 커다란 수치였다. 그 저주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랍비들의 기도서에 의하면 가장 기뻐할 일이었다. 나는 가난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나는 영적인 면에서 놀랍게 부요해졌다. 나는 궁핍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이 궁핍한 자를 구덩이에서 취하시고 놀라운 믿음 안의 형제 자매들을 주셨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 사귐을 허락해주셨다. 나는 잉태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위해 어떤 열매도 내 삶에서 맺지 못했다. 그러나 그분이 나를 공허하고 황폐한 인생에서 의미 있고 생산적인 삶으로 건져내셨다. 내가 시편 기자와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가 보좌를 채우시네.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이요 구속받은 자들의 찬양의 주제이신 그가 높은 보좌를 채우시네. 높이 계시지만 그가 찬양을 받으시네. 그의 백성이 이 땅에서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네. 그들이 드리는 희미하고 미약한 부르짖음이 구주의 귀에 상달하네.” (토마스 켈리)

114편: 주님의 능력의 임재

114: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속되고 광야생활을 경험하고 약속의 땅에 도달하는 전 과정은 시종 하나님의 권능을 놀랍게 드러내 주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과정이야말로 이제까지 일어난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나타남이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옴으로 오랜 속박과 압제의 세월이 끝난 것은 얼마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인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에게서 해방될 때의 그 기쁨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그들은 더 이상 이방 언어로 퍼부어지던 위협과 저주 아래 웅크리지 않았다!

114:2
얼마 후에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가 하나님의 성소가 되었다. 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땅이 그 분의 영토, 즉 그분이 한결같은 돌봄으로 살피시는 영역이 되었다. 지리적인 면에서 당시에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던 것이 오늘 날 영적인 면에서 교회에게 적용된다.

114:3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이르자 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 물러갔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 볼품없는 피난 행렬이 아니었다. 바다는 그 지으신 창조주를 우러러 보고는, 이스라엘이 발이 젖지 않은 채 건너갈 수 있도록 신속히 뒤로 물러갔다. 40년 후,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났다. 요단강이 아담 성읍에서 그 흐름을 멈추었고, 그 땅에 진입을 막던 마지막 장벽이 대로(大路)가 되었다. 홍해와 요단강을 건넌 일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두 사건이다. 홍해를 건넌 것은 그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에 있어 그리스도와 동일시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구속 된 것을 상징한다. 요단강을 건넌 것은 광야의 방황에서 건짐을 받아, 다시금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기업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114:4
그 두 사건 사이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다른 두려운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괄목할 한가지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사건이었다. 자연이 격동하여 산들이 수양같이 뛰고 작은 산들이 어린양같이 뛰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압도한 나머지 온 지경이 지각변동을 일으킨 양 뒤흔들렸다. 그 광경이 심히 두렵기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히 12:21).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른 곳은 그 두려운 율법의 산이 아니라 은혜의 보좌라고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율법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는 아무 상관없네. 내 구주의 순종하심과 흘리신 피가 내 모든 죄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네.”(아구스투스 M. 토플레이)

114:5~6
시편 기자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마음이 크게 기뻐서, 바다와 요단과 산과 작은 산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해달라고 재촉했다. 그 질문들은, 자연 가운데 힘과 견고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물들이 여호와 앞에서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조롱하는 노래의 형태를 띤다.

 114:7~8
이어서 온 땅은 그러한 하나님께 최고의 경의와 공경을 표해야 한다는 선언이 이어진다. 그분은 영원히 위대하신 ‘스스로 계신 자’인 동시에 야곱, 곧 쓸모 없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고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신다(출 17:6; 민 20:11). 이스라엘 백성은 갈증으로 완전히 낙담했다. 그들은 심히 원망했으며 심지어 애굽에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에 하나님은 처음에는 호렙에서, 그 다음에는 므리바에서 기적적으로 반석에서 못이 흐르게 하셨다. 그 반석은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해 맞으사 믿음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수를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고 바울은 말해준다(고전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