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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시편 143-144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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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7월 09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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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3-144편 연구
 
 143편: 기도의 여러 측면

12구절로 된 이 짧은 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로 다양한 주제와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143:1

 ‘기도를 들어달라는 일반적인 요청.’ “들으시며…귀를 기울 이시고…응답하소서.” 여기에는 표현의 빈곤 대신 뛰어난 다양성을 볼 수 있다. 다윗은 그분의 진실하심(그분의 약속에 대한)과 그분의 의(그분이 자신의 힘없는 종을 보호하시는 것은 의로운 일이므로) 로 응답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

143:2

 ‘회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죄인이다. 아무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의를 스스로 이뤄낼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우리가 아무 자격 없는 참회자로 그분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죄에서 우리를 구원한 구주로 받아들일 때,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기에 합당하게 된다.

143:3

‘위경.’ 상황은 긴박했다. 대적이 맹렬히 그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땅에 엎드러짐을 당한 자처럼 되었다. 그를 괴롭히는 자 들이 그를 압박하여 고립과 어두움과 은둔과 단절을 겪고, 그리고 무덤 속의 오래된 시체 마냥 잊혀지게 했다.

143:4

 ‘절박함.’ 그는 더 이상 자신이 감당치 못함을 두려워했다. 그의 심령은 포기 상태였고 그의 마음은 참담했다.

143:5

‘회상.’ 그는 하나님이 그를 위해,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놀라운 구원을 행하신 옛날을 되돌아보았다. 그러한 때가 이제 어디 있는가?

143:6

‘열정.’ 하나님을 향해 그 손을 펴는 데서 그의 기도의 진지함과 열기를 엿볼 수 있다. ‘강렬함.’ 그는 마치 마르고 황량한 땅이 신선한 비를 갈급해 하듯이 하나님을 갈망했다.

143:7

‘긴박성.’ 여호와께서 서둘러 그를 구원하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필경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은혜를 구함.’ 분노로든 무관심으로든 하나님의 낯을 숨긴다는 것은 죽음과 마찬가지였다.

143:8

 ‘인자하심을 구함.’ 그는 하나님이 곧 그에게 말과 한결같은 사랑의 어조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원했다. “아침에”는 일찍 내지 지체함 없음을 뜻한다. ‘인도하심을 바라는 기도.’ 어떤 이는 이 구절을 가리켜 모든 사람이 생활의 철칙으로 삼을만한 구절이라고 했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우리는 살 수 없다. 우리는 길을, 혹은 무엇이 우리에게 최선인 지를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만이 생산적이고 또 즐거운 삶이다.

143:9

 ‘구원을 위한 간구.’ 대적들의 위협으로 인해 다윗은 여호와께 구원과 안전을 부르짖었다. 그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보호만을 의지했으며, 그러한 순전한 믿음이 이제 그의 간구의 근거가 되었다.

143:10

‘가르침을 바라는 호소.’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 했을 뿐 아니라(8절) 그 뜻을 순종하는데 훈련된 마음을 원했다. 하나님은 결국 그의 하나님이었으며, 피조물이 그 창조자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합당한 일이겠는가?

‘평탄한 길을 위한 기도.’ 사람마다 살면서 굴곡을 겪게 마련이지 만 모두가 다윗처럼 험난한 역경을 겪지는 않는다. 그가 여기서 바라는 것은, 여호와의 선한 신(神)이 앞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극단적인 위험이나 재앙이 없는 평탄한 곳으로 그를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143:11

 ‘보존을 위한 간구.’ 자신의 지속적인 보존을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시키면서(“주의 이름을 인하여”) 시편 기자는 전능자의 손과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가장 강력한 지렛대 중 하나를 사용했다. 같은 방식으로 그는 자신이 환란에서 구원받아야 할 이유로서 하나님의 의(義)를 호소했다. 이것은 강력한 기도였다.

143:12

 ‘대적에 대한 보응.’ 끝으로 그는 그분의 인자하심의 증거로서 하나님이 그의 대적을 찾아 멸하실 것을 구했다. 혹 이런 일들 (파멸과 인자하심)이 모순처럼 들린다면 다음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악인의 멸망은 온 세상에는 은총이 된다. 강도를 체포하여 징벌하는 것이 사회와 인류에게 좋은 일(a mercy)이며, 모든 감옥이 공의 뿐 아니라 자비를 드러내듯이(사회에는 자비요, 범죄자에게는 공의) 그러하다.‘다윗의 마지막 호소는 그가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는 여호와 편에 있다. 그는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 오직 그의 대적을 제거함으로써만 그는 자신이 계속 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44편: 행복한 사람

이 시는 비록 상당 부분이 다른 시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 이뤄져 있으나 임의로 짜맞춰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일관성이 있다.

 
144:1~2

먼저 다윗은 하나님을 삶의 전투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라고 높였다. 여호와께서 대적과의 싸움에서 그에게 기술과 재능을 부여하셨다. 여호와는 그의 반석이요, 그의 인자요, 그의 요새요, 그의 산성이요, 그의 구원자요, 그의 방패요, 그의 피난처요, 그의 승리이다. 더 이상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겠는가?

144:3~4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비춰볼 때 인간은 실로 하찮은 존재이다.하나님이 인간을 살피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추운 날 입김 마냥 헛되고, 지나가는 그림자 마냥 덧없는 존재이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나, 다윗은 여기서 아마도 그의 대적을 특별히 염두에 둔 듯하다.

144:4~8

이것은 다윗으로 하여금, 무소불능한 하나님이 그 미미한 대적을 치러 나가실 때를 위해 기도하게끔 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출현을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유일한 방법은 온 자연이 격동하고 온 우주가 요동하는 그러한 엄위한 신현(神顯; 하 나님이 자연적인 사건 등의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역주) 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하늘이 낮게 드리운다. 그분이 산을 접촉하니 산이 연기를 뿜은 화산이 된다. 번개가 전능자가 쏜 화살처럼 하늘을 가로지른다. 이어서 대적이 완전히 와해되고 축출되자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환란의 소용돌이에서 다윗을 건져내신다. 그분은, 만성적인 거짓말쟁이요 진리를 지지하기 보다는 거짓을 말하기 위해 그 오른손을 드는 이방 침략자의 손에서 그를 건져내신다.

144:9~11

그가 건짐 받은 결과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새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방 대적들의 “해하는 칼”에서 그를 건져내신 분을 열 줄 비파로 찬양할 것이다. 그들은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하고서도 거짓을 일삼는 자들이다.

144:12

왕이 그러한 파괴적인 상황에서 건짐 받은 후에 그의 나라는 여기에 묘사된 이상적인 상태를 누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대적을 멸하고 그분의 천년통치를 세우실 때까지는 완전히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먼저, 가정이 부흥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아들들은 강하고 왕성한 나무같이 건강하고 씩씩하고 준수할 것이다. 딸들은 궁전의 새긴 기둥처럼 매혹적이고 아리따울 것이다.

144:13~15

이어서 들의 곡식이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다. 곳 간과 창고가 각종 곡식과 산물로 가득할 것이다. 양떼가 번식하여 들에 수만 마리가 넘칠 것이다. 가축은 아무 사고 없이 새끼를 낳을 것이다. 혹은 소는 짐을 무겁게 실을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옮겨져 있다-역주). “침노하는 일이나 나아가 막는 일이 없다”는 표현은 이방 침략자도 없고 강제로 추방당하는 일도 없고 소란한 소요(騷擾)도 없고 거리의 약탈도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자들에게 속한 비할데 없는 행복을 잘 묘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