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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9-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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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07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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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0편 연구

9편 : 보응의 날

만일 갈대아 역본의 비문(碑文)이 정확하다면, 다윗은 여기서 골리앗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승리를 뛰어넘어 그분의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시는 히브리어 철자의 전반부에 기초한 아크 로스틱(acrostic, 각 행의 머릿자 등을 모으면 말이 되는 유희시, 일 종의 글자 수수께기-역주)이다.

9:1~2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는 하나님의 모든 기이한 행사에 대해 감탄한다. 여기서 그는 그분의 창조나 구속 행위에 대해서 보다는 이스라엘의 대적을 파하시는 그분의 놀라운 공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다윗은 그 자신이나 인간의 무기나 기술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지극히 높이신 분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한다. 여호와께 대한 그의 사랑과 헌신을 볼 때 우리는 종종 얼마나 냉랭하고 무감각한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9:3~4
이어서 그는 하나님의 웅장한 싸움에 대해 회상한다. 물론 그의 진술의 완전한 성취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실현될 것이다. 그분을 보기만 해도 대적은 돌이켜 달아난다. 그들은 일대혼란에 빠질 것이며, 달아나기도 못한 채 망할 것이다. 의인은 그 날에 영광스런 보좌에 앉으신 왕에 의해 변호 받을 것이다. 마침내 세상은 의로운 심판이 어떤 것인지 경험할 것이다.

9:5~6
이방 압제자들은 신랄히 책망 받을 것이며, 모든 이스라엘의 대적은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그들은 그 과시하던 문명의 폐허 속에 묻힐 것이다. 지금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도시들이 완전히 뿌리뽑힐 것이다. 워싱턴, 모스크바, 오타와 등등의 이름들이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9:7~8
대적은 모두 사라질 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항상 그러하셨듯이 의롭고 신실하신 분으로 영원히 거하실 것이다. 그분은 찬란한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셔서 절대적인 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서 공평한 몫을 얻을 것이다. 바울은 아덴의 설교에서 이 8절 전반부를 사용하여, 그 미래의 심판의 집행 자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설명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0,31).

9:9~10
세상의 압제받는 모든 무리가 그분이 그들의 높은 망대요 견고한 피난처임을 발견할 것이다. 그분을 아는 모든 자는 그분이 그분의 백성의 믿는 바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셨음을 알고 그 분을 신뢰할 것이다.

9:11~12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찬양을 부를 뿐 아니라, 여호와의 놀라운 구원을 알리고, 그분의 백성의 흘린 피를 보수하시는 그분이 그들의 고난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채 드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이방 백성에 대한 선교적 역할을 성취할 것이다.

9:13~14
그러나 천년왕국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13,14절 은 절망적인 현재 상황으로 돌아오게 한다! 다윗은 여전히 대적으로부터 그를 보호할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시온의 문에 다시금 그의 즐거운 찬양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9:15
그런 다음 그는 다시 한번, 유대인을 대적하는 민족들이 유대인을 잡기 위해 판 구덩이에 빠지고 하나님의 옛 백성을 잡기 위해 놓은 그물에 걸려들 때로 건너뛴다. 그것은 역사의 반복이요,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교수대에 스스로 달린 사건의 또 하나의 예이다.

9:16
다시 한번 여호와께서 자신을, 악인으로 그 뿌린 것을 거두게 하심으로 상황을 공평하게 만드시는 분으로 계시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신다. “셀라”의 의미는 확실치 않다. 그것은 강조의 뜻일 수 있다(3편 주해 참조).

9:17
“악인이 음부(히브리어로 ‘스올’)로 돌아감이여”라고 말할 때 다윗은 그 단어를 육체에서 분리된 상태 혹은 무덤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여기서의 문맥은 지옥  자체를 의미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의 운명이다.

9: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동일하게 확실하다. 낙스가 옮긴 대로, “고난당하는 자의 인내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모든 것이 천년왕국 때에 성취될 것이다.

9:19~20 장차 올 의의 통치에 대한 다윗의 생각은 그 날의 도래를 바라는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여호와께서 인간의 계획을 파하고 열방을 심판하실 것을 구하는 기도가 흘러나온다. 전능한 재판장 앞에 설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두려움 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10편 : 공적(公敵) 제1호

여기서 시편 기자는 으뜸 되는 악을 묘사하기 위해 히브리어 철자 후반부에 기초한 아크로스틱을 사용한다. 이 “공적(公敵) 제1 호”는 죄의 화신(化身)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자연 그를 7년 환란 초기에 나타날 “불법의 사람”과 연결시키게 된다. 그 불법의 사람은 신(神)이나 숭배의 대상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거슬려 스스로를 그 위에 높일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하나님 전에 앉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선언할 것이다(살후 2:3,4). 그를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자 들은 경제적인 제재와 핍박과 심지어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10:1)

10:1
이 시의 서두에서 우리는 조만간 우리 모두가 던지게 될 질문을 대하게 된다. 무죄한 자가 고난당하고 악인이 아무 거칠 것 없이 다스리는데 왜 여호와께서는 잠잠히 계시는가? 이와 같은 의문이, 우리의 믿음을 일깨워 행동을 취하게 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 믿음을 갖도록 북돋워 주고, 그리고 우리로 끝까지 견디도록 도전을 준다.

압제받는 자의 기도(10:2)

10:2
악인은 차마 볼 수 없는 거만한 태도로 아무 힘없는 성도들을 사냥한다. 의인을 해하려고 베풀어둔 그 운명에 그들 스스로 빠지는 것보다 무엇이 더 그들에게 적합한 운명이겠는가?

대적의 실체(10:3~11)

10:3~4
그 모든 계획하는 바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악인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는 부를 쌓고자 미친 듯이 애씀으로 여호와를 모독하고 멸시하는데, 이는 금을 숭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삶의 방식은 자기만족적이다. 그는 하나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분이 존재하시지 않는 양 살아간다.

10:5~6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되어 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늘 붙어 다니는 환란을 피해간다. 하나님이 그 분의 백성을 위해 마련하신 지침들은 악인에게는 너무 높다. 그는 영적인 진리나 거룩한 원리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의 대적을 철저히 경멸하며, 자신의 안전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는 동안 환란 없는 삶을 누릴 것이다.

10:7~8
그가 머무는 곳마다 대기는 죄악으로 얼룩질 것이 상상 된다. 그는 어떤 이를 속이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건설적인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항상 범죄와 파괴에 대한 얘기뿐이다. 다른 강도들처럼 그는 무죄한 자를 덮치려고 아무 경비도 없는 은밀한 곳에서 기다린다. 무죄한 자가 지나 갈 때 그는 그를 기습한다. 그는 항상 의심치 않는 자와 힘없는 자를 찾아다닌다.

10:9~11
굴속의 사자처럼 그는 먹이를 덮칠 준비가 되어 있다. 사냥꾼처럼 그는 공갈과 강압과 뇌물과 종속과 혹은 죽음으로 희생 물을 그의 덫으로 유인한다. 그 불행한 희생물은 그 죄악의 엄청난 힘에 압도당한다. 절망 중에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잊으셨으며, 그 분이 다른 곳을 살피시고 그분의 자녀의 위경을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느낀다.

충성된 자의 부르짖음(10:12~18)

10:12~13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들어 압제자를 심판하고 고난당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을 취하실 시간이다. 왜 악의 세력이 그 불경건과 불신앙 중에 계속 머물도록 허락되었는가? 왜 그들이,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을 회개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허용되어야 했는가?

10:14~15
하나님은 감찰하신다. 그분은 모든 불의하고 패역한 행동을 주의 깊게 계산하시며, 따라서 장차 올 날에 완전히 갚을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외로운 자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헛되지 않다. 하나님이 자신을 고아의 친구로 증명하지 않으셨던가? 여호와께서 충성된 자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되, 악인의 팔을 꺾고 그 마지막 흔적까지 징벌할 때까지 그의 악함을 드러내심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다.

10:16
이 세상 나라가 우리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그 신원(伸寃)의 날이 이를 것이다. 그 때에 악하고 압제하는 열방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멸망할 것이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사 41:11~13).

10:17~18
우리는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 실 것을 온전히 확신할 수 있다. 그분은 모든 시련에 필요한 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며,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들을 굽어 살피사 그 들에게 공의가 베풀어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자가 더 이상 가난하고 아무 힘없는 자를 압제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9편 : 보응의 날

만일 갈대아 역본의 비문(碑文)이 정확하다면, 다윗은 여기서 골리앗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승리를 뛰어넘어 그분의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시는 히브리어 철자의 전반부에 기초한 아크 로스틱(acrostic, 각 행의 머릿자 등을 모으면 말이 되는 유희시, 일 종의 글자 수수께기-역주)이다.

9:1~2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는 하나님의 모든 기이한 행사에 대해 감탄한다. 여기서 그는 그분의 창조나 구속 행위에 대해서 보다는 이스라엘의 대적을 파하시는 그분의 놀라운 공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다윗은 그 자신이나 인간의 무기나 기술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지극히 높이신 분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한다. 여호와께 대한 그의 사랑과 헌신을 볼 때 우리는 종종 얼마나 냉랭하고 무감각한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9:3~4
이어서 그는 하나님의 웅장한 싸움에 대해 회상한다. 물론 그의 진술의 완전한 성취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실현될 것이다. 그분을 보기만 해도 대적은 돌이켜 달아난다. 그들은 일대혼란에 빠질 것이며, 달아나기도 못한 채 망할 것이다. 의인은 그 날에 영광스런 보좌에 앉으신 왕에 의해 변호 받을 것이다. 마침내 세상은 의로운 심판이 어떤 것인지 경험할 것이다.

9:5~6
이방 압제자들은 신랄히 책망 받을 것이며, 모든 이스라엘의 대적은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그들은 그 과시하던 문명의 폐허 속에 묻힐 것이다. 지금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도시들이 완전히 뿌리뽑힐 것이다. 워싱턴, 모스크바, 오타와 등등의 이름들이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9:7~8
대적은 모두 사라질 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항상 그러하셨듯이 의롭고 신실하신 분으로 영원히 거하실 것이다. 그분은 찬란한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셔서 절대적인 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서 공평한 몫을 얻을 것이다. 바울은 아덴의 설교에서 이 8절 전반부를 사용하여, 그 미래의 심판의 집행 자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설명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0,31).

9:9~10
세상의 압제받는 모든 무리가 그분이 그들의 높은 망대요 견고한 피난처임을 발견할 것이다. 그분을 아는 모든 자는 그분이 그분의 백성의 믿는 바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셨음을 알고 그 분을 신뢰할 것이다.

9:11~12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찬양을 부를 뿐 아니라, 여호와의 놀라운 구원을 알리고, 그분의 백성의 흘린 피를 보수하시는 그분이 그들의 고난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채 드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이방 백성에 대한 선교적 역할을 성취할 것이다.

9:13~14
그러나 천년왕국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13,14절 은 절망적인 현재 상황으로 돌아오게 한다! 다윗은 여전히 대적으로부터 그를 보호할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시온의 문에 다시금 그의 즐거운 찬양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9:15
그런 다음 그는 다시 한번, 유대인을 대적하는 민족들이 유대인을 잡기 위해 판 구덩이에 빠지고 하나님의 옛 백성을 잡기 위해 놓은 그물에 걸려들 때로 건너뛴다. 그것은 역사의 반복이요,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운 교수대에 스스로 달린 사건의 또 하나의 예이다.

9:16
다시 한번 여호와께서 자신을, 악인으로 그 뿌린 것을 거두게 하심으로 상황을 공평하게 만드시는 분으로 계시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신다. “셀라”의 의미는 확실치 않다. 그것은 강조의 뜻일 수 있다(3편 주해 참조).

9:17
“악인이 음부(히브리어로 ‘스올’)로 돌아감이여”라고 말할 때 다윗은 그 단어를 육체에서 분리된 상태 혹은 무덤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여기서의 문맥은 지옥  자체를 의미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의 운명이다.

9: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동일하게 확실하다. 낙스가 옮긴 대로, “고난당하는 자의 인내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모든 것이 천년왕국 때에 성취될 것이다.

9:19~20 장차 올 의의 통치에 대한 다윗의 생각은 그 날의 도래를 바라는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여호와께서 인간의 계획을 파하고 열방을 심판하실 것을 구하는 기도가 흘러나온다. 전능한 재판장 앞에 설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두려움 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10편 : 공적(公敵) 제1호

여기서 시편 기자는 으뜸 되는 악을 묘사하기 위해 히브리어 철자 후반부에 기초한 아크로스틱을 사용한다. 이 “공적(公敵) 제1 호”는 죄의 화신(化身)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자연 그를 7년 환란 초기에 나타날 “불법의 사람”과 연결시키게 된다. 그 불법의 사람은 신(神)이나 숭배의 대상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거슬려 스스로를 그 위에 높일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하나님 전에 앉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선언할 것이다(살후 2:3,4). 그를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자 들은 경제적인 제재와 핍박과 심지어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10:1)

10:1
이 시의 서두에서 우리는 조만간 우리 모두가 던지게 될 질문을 대하게 된다. 무죄한 자가 고난당하고 악인이 아무 거칠 것 없이 다스리는데 왜 여호와께서는 잠잠히 계시는가? 이와 같은 의문이, 우리의 믿음을 일깨워 행동을 취하게 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 믿음을 갖도록 북돋워 주고, 그리고 우리로 끝까지 견디도록 도전을 준다.

압제받는 자의 기도(10:2)

10:2
악인은 차마 볼 수 없는 거만한 태도로 아무 힘없는 성도들을 사냥한다. 의인을 해하려고 베풀어둔 그 운명에 그들 스스로 빠지는 것보다 무엇이 더 그들에게 적합한 운명이겠는가?

대적의 실체(10:3~11)

10:3~4
그 모든 계획하는 바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악인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는 부를 쌓고자 미친 듯이 애씀으로 여호와를 모독하고 멸시하는데, 이는 금을 숭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삶의 방식은 자기만족적이다. 그는 하나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분이 존재하시지 않는 양 살아간다.

10:5~6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되어 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늘 붙어 다니는 환란을 피해간다. 하나님이 그 분의 백성을 위해 마련하신 지침들은 악인에게는 너무 높다. 그는 영적인 진리나 거룩한 원리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그의 대적을 철저히 경멸하며, 자신의 안전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는 동안 환란 없는 삶을 누릴 것이다.

10:7~8
그가 머무는 곳마다 대기는 죄악으로 얼룩질 것이 상상 된다. 그는 어떤 이를 속이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건설적인 얘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항상 범죄와 파괴에 대한 얘기뿐이다. 다른 강도들처럼 그는 무죄한 자를 덮치려고 아무 경비도 없는 은밀한 곳에서 기다린다. 무죄한 자가 지나 갈 때 그는 그를 기습한다. 그는 항상 의심치 않는 자와 힘없는 자를 찾아다닌다.

10:9~11
굴속의 사자처럼 그는 먹이를 덮칠 준비가 되어 있다. 사냥꾼처럼 그는 공갈과 강압과 뇌물과 종속과 혹은 죽음으로 희생 물을 그의 덫으로 유인한다. 그 불행한 희생물은 그 죄악의 엄청난 힘에 압도당한다. 절망 중에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잊으셨으며, 그 분이 다른 곳을 살피시고 그분의 자녀의 위경을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느낀다.

충성된 자의 부르짖음(10:12~18)

10:12~13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들어 압제자를 심판하고 고난당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동을 취하실 시간이다. 왜 악의 세력이 그 불경건과 불신앙 중에 계속 머물도록 허락되었는가? 왜 그들이,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을 회개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허용되어야 했는가?

10:14~15
하나님은 감찰하신다. 그분은 모든 불의하고 패역한 행동을 주의 깊게 계산하시며, 따라서 장차 올 날에 완전히 갚을 수 있으시다. 그러므로 외로운 자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헛되지 않다. 하나님이 자신을 고아의 친구로 증명하지 않으셨던가? 여호와께서 충성된 자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되, 악인의 팔을 꺾고 그 마지막 흔적까지 징벌할 때까지 그의 악함을 드러내심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다.

10:16
이 세상 나라가 우리 하나님과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그 신원(伸寃)의 날이 이를 것이다. 그 때에 악하고 압제하는 열방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멸망할 것이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사 41:11~13).

10:17~18
우리는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 실 것을 온전히 확신할 수 있다. 그분은 모든 시련에 필요한 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며,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들을 굽어 살피사 그 들에게 공의가 베풀어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자가 더 이상 가난하고 아무 힘없는 자를 압제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