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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13-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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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09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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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14편 연구

13편 : 어느 때까지니이까?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표현이 네 번 다윗의 입술로부터 나온다. 대적(사울로 추측)에게 맹렬히 쫓기는 중에 다윗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수레가 더디 오는지 의아해했다. 그를 압박하는 다음 네 가지 두려운 짐에서 벗어나게 할 도움이 과연 오지 않는 것인가? 그는 하나님이 그를 잊으셨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이 여호와의 은총에서 끊겨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날마다 영혼의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그는 늘 패배자의 입장에 서는 부끄러움을 당했다.

13:1~4
하나님은 다윗의 곤경을 주목하고 두 가지 재난을 피하도록 속히 도움을 보내셔야 한다. 첫째는 다윗의 죽음이며, 둘째는 그의 대적의 자긍하는 지껄임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다윗의 눈에 생기를 회복하기 위해 신속히 행동하시지 않는다면 그 눈은 곧 영원히 죽음 속에 잠길 것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물결을 돌이키지 않으신다면 대적이 곧 이겼다고, 다윗이 완전히 패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13:5~6 .
이제 결과에 대해선 아무 의문이 없다. 시편 기자는 응답이 오고 있다고 믿는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의뢰하는 까닭에 그는 자신이 살아서 대적에게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그 구원을 바라보며 그는 그 한량없는 사랑으로 인해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다. 이 시는 우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여러 시험과도 같다. 그 시험 들은 한숨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마감한다!

14편 : 어리석은 자의 신조(信條)

14:1
어리석은 자의 신조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원치 않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것은 불합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전지성)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안다. 하나님이 내 지식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둘째로, 그런 태도는 자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편재성)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한번에,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며, 하나님이 내가 모르는 중에 우주의 어느 곳에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한 입장은 창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경이로움, 즉 우주의 광활함, 행성의 놀라우리만큼 정확한 운동, 인체의 난해한 구성, 인간의 뇌의 경이로운 구조, 물과 흙의 놀라운 특성 등등의 경이로움을 무시해버린다. 예를 들어, 생명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지구의 성격을 살펴 보라. 헨리 보쉬는 하나님의 주의 깊고 놀라운 계획의 실례를 다음과 같 이 지적했다. “지구는 시간당 약 1천 마일의 속도로 지축을 중심으로 돈다. 만 일 시간당 100마일로 돈다면 낮과 밤이 열 배 길어질 것이며, 지구는 불탔다 얼었다를 반복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식물이 살 수 없다! 만일 지구가 달처럼 작다면, 중력이 너무 약해서 인간의 필요에 충분한 대기를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지구가 목성이나 토성이나 천왕성처럼 크다면 중력이 너무 커서 인간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지구가 금성처럼 태양에 가까이 있다면 아무리 더운 지역에서도 매일 밤 눈과 얼음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바다가 현재의 면적의 절반이라면 강우량이 현재의 4분의 1로 감소 될 것이다. 만일 바다의 면적이 8분의 1 늘어난다면 연중 강우량은 4배 증가될 것이고, 지구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광활한 습지가 될 것 이다. 물은 화씨 32도(섭씨 0도)에서 동결된다. 그러나 만일 바다가 그 온도에서 언다면 재앙이 미칠 것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극지방의 눈이 녹는 양이 균형을 잃을 것이며, 얼음이 수세기 동안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재앙을 예방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는 바다에 소금을 넣어 그 빙점을 달리 정하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우연히 발생했을 가능성은 너무 희박해서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무신론자를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것은 그들의 지성 지수(IQ)가 아닌 도덕지수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한 어리석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그들이 스스로 부패하고 가증히 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조와 품행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낮을수록 그 도덕성도 낮아지기 쉽다. 원인으로서든 결과로서든, 무신론과 영지주의는 타락한 삶과 관계가 있다. 바네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없다는 믿음은 흔히 죄악된 삶으로 이끄는 욕망에 기초하거나, 아니면 타락한 중에 계속 머물면서 장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피해보려는 욕망을 지닌 채 사실상 그러한 삶을 사는 자들에 의해 옹호된다.”

14:2~3
여호와께서 아담의 자손 중에 하나님을 찾으며 지혜롭게 행하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하늘에서 굽어 살피셨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인간은 본질과 실제행위에 있어서 죄인이다. 만일 홀로 내버려둔다면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이다. 바울은 죄가 온 인류와 인간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쳤음을 보 여주기 위해 로마서 3:10~12에서 이 시의 처음 세 구절을 인용한다. 여기 이 시에서, 물론 그 묘사가 확실히 사실이긴 하지만, 다윗은 온 인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과 대조적으로 공공연히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불경건한 자들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나간 자들이다. 그들은 도덕적 으로 부패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선을 행하는 자를, 하나도 발견치 못하셨다.

14:4
그들의 무지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보호하시고 죄를 징벌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마치 떡 먹는 일처럼 합법적이고 일상적인 일인 양 신자들을 삼키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엄위 하심을 안다면 기도 없이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14:5~6
여호와께서 무죄한 자 편에 서실 때 불의한 자는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그들은 늘 가난한 자들의 단순한 믿음을 조롱했으나, 이제는 그들이 부인하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의 피난처이심 을 알게 될 것이다.

14:7
메시야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시온에서 오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유대인 성도들이 유일한 참 하나님을 부인하는 열방 중에 포로된데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건짐 받을 때 이스라엘의 기쁨은 한량없이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