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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31-3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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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22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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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1-32편 연구

31편 

31:1
서두에서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계신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분은 항상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살아오셨다. 이제 가장 깊은 고난의 순간에, 그분은 여호와를 자신의 유일하고 충분한 피난처로 다시금 신뢰한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을 의뢰한데 대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신다. 그것은 그 이름의 영예가 그 아들의 부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하나님께 상기시키는 매우 강력한 기도이다. 아버지께서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것은 의(義)의 행동이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구주께서는 잘못된 신뢰의 희생물로 드러나실 것이며, 그로써 부끄러움을 당하시게 될 것이다.

31:2~3
탁월한 의인법(擬人法)을 사용하여, 외로운 고난당하는 분께서 하나님께 갈보리로 귀를 기울이실 것을 요청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절박한 호소를 들으시고 속히 도우러 오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그분은 더 나아가 여호와께 견고하고 요동치 않는 피할 바위가 되시고, 모든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는 강한 요새가 되실 것을 요구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이미 그분의 바위와 요새요, 그분의 유일한 보호와 안전이셨다. 다시 한번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예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호소하신다.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하나님이 의인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던가? 진실로 그렇게 약속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과 영광으로 구원함으로 자신의 이름을 영예롭게 하라는 요청을 받으신다.

31:4
구주를 사로잡기 위한 죽음의 그물이 비밀히 쳐졌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안전하고 강한 피난처시기에, 그 그물에서 자신을 빼어내고 무덤에서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신다.

31:5(상)
누가는 예수께서 이 5절 상반절을 큰 소리로 인용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도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앗아가지 못했다. 다만 그분이 자원해서, 그 능력을 온전히 소유한 가운데 생명을 내어놓으신 것이다. 이 고백은 그 때 이후로 여러 세기를 내려오면 서 루터, 낙스, 후스 등 임종을 맞은 여러 하나님의 성도들에 의해 되풀이되어 왔다.

부활에 대한 찬양(31:5하~8)

31:5(하)~6
5절 중간에는 분명한 구분점, 즉 죽음에서 부활로의 전환, 기도에서 찬양으로의 변화가 있다. 그분의 약속에 신실하게,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자를 죽음과 무덤에서 구속하셨다. 그것은 그 아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한 것을 영광스럽게 보상하신 것이었다. 헛된 우상을 의지하는 자들은 여호와의 경멸만을 받을 것이다!

31:7~8
이제 고난 중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위에 머무른 변치 않는 사랑으로 인해 찬양의 노래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그분의 모든 곤란을 온전히 감찰하신 사랑이요, 그분을 대적의 세력에 넘겨주기를 거절하신 사랑이요, 구주를 구덩이에서 끌 어 내사 그 발을 ‘부활의 땅’인 넓은 곳에 세우신 사랑이었다.

깊은 환란(31:9~13)

31:9~10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심문과 십자가 처형에 앞선 그 생애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죄인들의 극심한 증오를 견디시면서 그 슬픔의 사람께서 하신 기도를 들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멸시와 거절을 당하신 그분은 환란 중에 여호와를 바라보고 은혜로이 돌아보실 것을 호소하셨다.그분은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비방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사람들이 그분을 죽이려고 음모를 꾀하므로 에워쌌다. 이러한 비참하고 가련한 모습은 누가 당하든 참으로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주의 창조주요 생명과 영광의 주(主)에 대한 묘사이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구원을 바라는 기도(31:14~18)

31:14~17(상)
슬픔과 탄식이 믿음의 기도로 대체된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시는 그분이 여호와를 자신의 소망이요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시대(때)가 아버지의 손에 있다는 사실에서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발견하신다. 그러한 위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들이 형통할 때나 슬픔을 당할 때나 한결같이 경험해왔다. 이같이 신뢰와 복종을 다짐하신 후에 주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핍박하는 대적의 사슬에서 자신을 건져주실 것을 기도하신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은혜 가운데 하감해 주시기를 기도하신다.

31:17(상)~18
악인에게로 관심을 돌리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잠잠히 음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다.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을 비방한 그들의 거짓된 입술을 잠잠케 해달라고 구하신다. 어떤 신실한 사람들은 본문의 어조가 그리스도 인 답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이 죄인들의 난폭함과 그 죄의 사악함과, 그리고 그 희생자의 무죄함을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은 그 표현이 그리 강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하나님은 큰 피난처(31:19,20)

31:19~20
다시 한번 이 시는 절망에서 기쁨으로, 탄원에서 찬양으로 전환된다. 위엄있는 어조로 주 예수님은 그분의 아버지를 비할 데 없는 피난처로 높이신다. 그분은 하나님을 그분(하나님)의 믿는 백성을 위해 쌓아둔 고갈되지 않는 은혜의 곳간의 책임자로 묘사하신다. 그분은 인생 앞에서 그분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러한 보화를 풍성히 쏟아 붓기 위해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존전은 그분의 택한 성도들이 사람의 간사한 꾀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소란한 다툼’이라고 낙스가 표현한 것을 피하는 충분한 피난처가 되신다.

개인적인 감사(31:21,22)

31:21~22 주 예수님은 포위된 성처럼 대적으로 완전히 에워싸 였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게 나타나는 것을 경험한바 있었다. 그런데 놀라게도 그분이 여호와께 완전히 버림받으신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두려운 세 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분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여호와를 사랑하라!(31:23,24)

31:23~24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신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보답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시며, 합당하게도 다른 모든 사람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믿는 백성들은 보호 하시고 교만한 거역자들에게는 응당한 징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의뢰할 수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직면한 신자들은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는 확신 안에서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


 32:1~2
로마서 4:7,8에서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에도 행위와 무관하게 믿음으로 의롭다함이 주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시편 32:1, 2을 인용하고 있다. 그는 구원을 노력하거나 자격을 갖춰 얻는 의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죄 사함을 받은 죄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죄 사함 받은 사람의 복을 묘사하는데 있어 행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여기에서, 다윗이 행위와는 전혀 무관하게 하나님이 의(義)를 전가하시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고 추론한다(롬 4:6).

32:3~4
이어서 다윗은 작은 열쇠로 바꾼다. 그는 밧세바와 간음을 범하고 우리아를 죽게 만든 다음 고집스럽게 자신의 죄를 자백 하기를 거절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비밀로 하려고 애썼다. 아마 그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걸” 하고 합리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집스레 자백을 거절하는 동안 그는 하나님과, 그리고 그 자신의 양심(his own best interests)과 더불어 싸우고 있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쇠약해졌으며, 그 모든 것은 그 마음의 풀리지 않은 번민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이 매 순간 그를 무겁게 누르고 저지하고 가로막고 좌절시키고 있음을 인식했다. 아무것도 더 이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삶의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지 않았다. 평온한 날들은 사라졌고, 메마른 광야처럼 아무 의미 없는 것들뿐이었다

32:5
뉘우침 없이 그렇게 한 해를 지낸 뒤에 다윗은 마침내 하나님이 기다리시던 한 마디(“내가 범죄하였나이다”)를 스스로 토설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 모든 부끄러운 이야기가 고름 짜듯 흘러나왔다. 이제는 꾸미거나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변명을 늘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다윗은 마침내 죄를 그 본연의 이름으로 부른다. “내 죄를…내 죄악을…내 죄의 악을….” 죄를 자백하자마자 그는 여호와께서 그의 죄의 악을 사하셨다는 즉각적인 확신을 얻는다.

32:6
그의 기도 응답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백성도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게끔 자극해준다. 여호와와 사귐 가운데 사는 자들은 환란 때에 구원을 얻을 것이다. 홍수가 그들을 엄몰하지 못할 것이다.

32:7
전에는 그렇게 완고하고 뉘우치지 않던 자가 이제는 자신을 회개하고 마음이 부수어졌다.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이 그의 은신처요 환란에서 보호하시는 분이요, 구원의 노래로 그를 두르시는 분이라고 시인한다.

32:8~9
8,9절은 다윗의 말인지 여호와의 말씀인지 의문을 남긴다. 만일 다윗의 말로 이해한다면 본문은 “용서의 자연적인 반응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특히 환란 중에 있는 사람들을 상담해줌으로써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한 제이 아담스의 말을 상기시킨다.만일 다른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본문은 여호와께서 인도를 약속하시고, 끊임없는 굴복이 필요함을 교훈해 주심으로써 다윗의 경배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돌아온 실패자(backslider)를 위해 잔치를 배설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앞길에 대한 감독적인 지도와 삶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의 개인적인 조언을 제공하신다.

32:10~11
다윗이 아는 한, 의인은 모든 면에서 악인을 능가한 다. 그 둘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많은 슬픔이 악인의 유산이다. 그러나 겸손한 신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그 주위를 두른다. 따라서 의인이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이 외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