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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 연구 시편 33-3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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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23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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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3-34편 연구

33편 : 새 노래

이 시는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고, 여호와께서 만유의 주재로 인정받으시는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즉, 이 시는 이방인의 압제가 끝나고 야곱의 환란의 때가 끝나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시작에 속한 시이다.

33:1~2
1~7절은 이스라엘에게 경배를 촉구하고, 8절은 이방인에게도 그것을 촉구한다. 찬양은 심히 아름답고 마땅한 바이기에 가능한 가장 감미롭고 세련된 악기(수금과 열 줄 비파)로 연주해야 한다.

33:3
새 노래는 구속의 노래이다. 그 노래는 죄사함(시 32편) 뒤에 오며,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함을 입은 모든 자들에게 속한다. 그러나 그 노래는 천년왕국이 개막될 때 구속받은 이스라 엘에 의해 매우 특별한 모습으로 불려질 것이다(계 14:3).

33:4
이 새 노래는 여호와의 말씀과 그분의 모든 행사를 기념한다. 그분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의롭고 불변하고 믿을 만 하다. 그분의 모든 행사는 신실히 행해진다.
그것은 창조에 나타나 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그것은 섭리 가운데 나타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고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리고 그것은 구속에 나타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33:5
하나님은 정직하고 진실하고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대한 증거가 온 땅에 가득하다.

33:6~7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분이 다름 아닌 능력의 말씀으로만 하늘과 그 빛나는 별들을 지으신데 나타나 있다. 그분은 손쉽게 바다를 정한선 안에 가둬두셨다. 어떤 이들은 이 두 마디 언급을 이스라엘과 이방 열국을 가리키는 시적인 암시로 해석하여, 하늘의 별은 이스라엘을(창 15:5), 그리고 노한 바다는 주 예수님에 의해 그 재림시에 마침내 멸망될 이방 열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33:8~9
어쨌든 하나님은 극히 위대하시므로 온 인류는 마땅히 그분을 경외하고 최고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은 물질을 이루는 거룩한 능력이었다. 그분의 명령에 의해 만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33:10~11
인류 역사를 통해 불경건한 나라들은 하나님을 훼방 하고 그분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 공모해왔다. 그러나 번즈가 말한 대로, “그들은 스스로 만든 최고의 계략에 스스로 말려들어 미쳐버린다!” 하나님은 그 대적들이 꾸민 간교한 전략을 마침내 좌절시키신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분의 목적의 성취를 훼방할 수 없다. 그분은 항상 마지막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그 모든 계획이 실현될 것이다. 

33:12
그러므로 축복의 길은 하나님과 협력하는데 있다. 여호와를 그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백성은 복이 있다. 그들은 그분이 그 자신의 기업으로 빼신 백성이다.

33:13~17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하감하사 온 인류를 온전히 살피신다. 아무것도 그분을 피하지 못한다. 그분은 모든 일을 아시며, 더더욱, 모든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아신다. 그분은 육신의 무기로 싸우는 자들을 아시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신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 육군과 해군과 공군을 의지한다. 최고의 병기가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없음을 그들이 깨닫지  못한다

33:18~19
하나님은 또한 구원을 위해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과, 필요한 도움을 위해 그분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자들을 살피신다. 그들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다. 그분은 각별한 사랑으로 그들을 주목하신다.

33:20~22
 시편 기자와 그의 백성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는 의문이 없다. 그들은 여호와를 그들의 돕는 자요 보호자로 의뢰한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모든 것을 의뢰함으로써 참 복을 발견해왔다. 다만 그들이 구하는 바는 오직 그분만을 계속 의뢰하며 그분의 한결같은 사랑의 햇살을 계속 쬐는 것이다

34편 : 새로운 출생의 시

이 시의 역사적인 배경은 사무엘상 21장에서 발견된다. 사울의 추적을 피하는 중에 다윗은 아기스, 혹은 아비멜렉(이 시의 표제어에 의하면)이란 이름의 가드의 블레셋 왕에게 도피처를 구한바 있었다. (아비멜렉은 인명이 아니라 칭호였을 것이다.) 그 대적의 왕이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다윗은 성문에 쓰러진 채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체를 했다. 그 왕은 더 이상의 미치광이는 필요없다고 하며 다윗을 내쫓았고, 다윗은 아둘람 굴로 피신했다. 오랜 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신자들은, 주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 받은 그들 자신의 간증을 훌륭하게 표현해주는 까닭에 이 34편을 사랑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 시를 한번 살펴보자.

34:1
죄로부터의 구원은 그것을 베푸시는 분에 대해 우리 마음에 끊이지 않는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말할 수 없이 값진 선물이다. 혹 우리가 여호와를 종일토록 송축한다해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그 분을 송축함이 우리 입술에 계속 머문다해도 그 주제를 결코 고갈 시킬 수 없다. 인간의 입술로는 하나님을 영영토록 충분히 감사치 못할 것이다.

34:2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의 성품이나 성취가 아닌 여호와를 자랑한다. 은혜의 복음을 이해할 때 우리는 다만 죄를 지었으며 그리스도께서 홀로 구원을 이루셨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자랑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있어야 한다. 만일 여전히 죄 가운데 사로 잡힌 자들이 완전하고도 값없는 구원에 대한 우리의 증거를 듣고 귀기울인다면 그들 또한 소망이 있음을 발견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34:3
확실히 구원받은 영혼은 홀로 구속을 즐거워하는데 만족치 않는다. 그것은 너무도 놀라운 주제이기에 그는 그와 함께 여호와를 높이고 모두 함께 그분의 이름을 찬양할 것을 모든 이웃에게 촉구한다. 어떤 부부들은 이 말씀을 결혼반지에 새겨 넣기도 한다.

34:4
하나님의 성령께서 죄인의 영혼을 가만히 감싸실 때 여호와를 찾고자 하는 거룩한 본능을 그 속에 심어주신다. 구원받은 죄인은 나중에서야 비로소 여호와께서 먼저 자기를 찾으셨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다음 찬송시와도 같다. “내가 주를 찾았으나 후에 안 것은 그분이 내 영혼 움직여 그분을 찾게 하려고 나를 찾으셨네. 오 구주여, 내가 당신을 찾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찾으셨네.” (익명). 지금도 우리가 그분을 찾으면 그분이 응답하사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신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으면 우리는 “네 죄가 사해졌으니 평안히 가라!”는 그분의 절대적인 말씀을 듣게 된다.

34:5
그러나 그것은 개인만의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자는 광채를 입는다. 찌푸린 얼굴은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고 낙심과 절망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여호와께 삶을 의탁하는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그분은 신뢰하는 영혼을 낙담케 할 수 없으시다.

34:6
우리는 곤고함과 파산과 수치와 무력함 가운데 그분께 나아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기꺼이 고백한다. 우리는 그분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빈 손으로 나아와 당신의 십자가만 붙드네.” 여호와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우리의 곤고함이 그분의 무한한 자원을 움직인다. 그분이 우리를 굽어 살피사 모든 환란 에서(우리 손으로 짠 죄의 올가미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34:7
믿는 자는 구원만이 아니라 보존도 받는다. 여호와의 사자,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의 호위병이 되사 보이는 위험과 보이지 않는 모든 위험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분의 양은 하나도 멸망할 수 없다(요 10:28).

34:8~9
구주를 아는 자들은 그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를 원한다. 사마리아의 네 문둥이들처럼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왕하 7:9). 여기 전도자의 외침을 들어 보라.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믿을 만한 긴박한 초청이다. 우리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복음증거를 생각하고 논증하고 전파 할 수 있지만, 모든 증거가 끝난 뒤에 그 사람이 직접 맛보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놀랍고 기적적이고 풍성한 공급하심을 경험할 것을 권함받는다. 이것은 마태복음 6:33의 메시지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10
젊은 사자는 때로 먹을 것이 부족하여 주릴지라도 여호 와를 경외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위대하고 모든 것에 충족하신 공급자이시기 때문이다!

34:11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하고 보호하고 공급할 뿐만 아니라 가르침도 준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1~14). 그러기에 여기서 시편 기자는 그 아들들에게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는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1) 통제된 혀-악과 궤사한 말이 없는 혀.
(2) 분리된 걸음-악에서 선한 행실로 분리된 걸음. (3) 화평한 성품-바울이 말한 대로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한” 성품(롬 12:18).

34:16
16절을 인용하면서 베드로는 그 상반절만 인용했다.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그는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라고 한 나머지 부분은 인용하지 않았다. 이 구절의 전반부는 어느 시대든 해당된다. 그리고 그 후반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지상에 재림하실 때 성취될 것이다.

34:17
의인은 여호와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말할 수 없는 특권을 지닌다. 그분은 그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들으시며 모든 환란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바네스는 이에 대해,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허락받은 특권, 즉 기도의 특권은 아무도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라고 표현했다. 17절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환란 ‘자체로부터’ (from)가 아닌 환란 ‘가운데서’(out of)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자들은 환란에서 면제되지는 않으나 강한 구원자를 소유한다! 그것이 중요한 차이이다.

34:18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는 거절하지만 상하고 뉘우치는 마음은 거절치 않으신다. 그분은 친히 마음이 상한 자에게 다가가시며, 늘 손을 내밀어 그 상한 마음을 고쳐 주신다. 

34:19
앞서 언급했듯이 의인은 고난이 많다. 아마 앞으로 언젠가 우리는 경건치 않은 자들보다 더 고난이 많았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모든 고난은 이생에 국한한다. 게다가 우리는 그것을 홀로 감당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가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구원을 확신한다.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언젠가 죄와 질병과 슬픔과 고난과 죽음이 없는 몸으로 다시 살 것이다!

34:20
그러나 죽음에서조차도 여호와께서는 그 성도들의 몸을 보호하신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이 구절은 우리 주님이 죽으실 때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9:33,36). 물론 여기서 우리 주님은 다음과 같이 기록된 유월절 어린양이 예표하는 모형의 완전한 실체이시다. “…뼈도 꺾지 말지며”(출 12:46).

34:21~22
이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은 “죄를 받으리로다”(condemned)라는 표현이 붙어있다. 악인의 경우엔 재앙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며, 그들은 정죄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 들은 그 영혼을 구속하신 분을 소유하며,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는 아무도 정죄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사랑의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호라티우스 보나르). 이와 같이 신자는 시간과 영원에서 구원과 보호와 그리고 풍성한 공급하심을 체험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것이 이 시의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