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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39-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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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28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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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39-40편 연구

39편 : 마음의 불
 
39:1~3

“나는 극한 곤경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거역하거나 원망을 발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나는 불신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한 내 입에 재갈을 물리기로 서원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할 만한 어떤 구실도 주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일절 드러내지 않은 채 벙어리처럼 잠잠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내 마음은 분개와 당혹감으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나는 주께서 왜 나로 그러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꾹 참게 하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내 영혼의 고통을 어루만지면 만질수록 내적인 압박은 더욱 커졌습니다. 끝내 내 모든 억압된 감정들이 의문에 찬 기도로 분출되었습니다.”

39:4~6

“여호와여, 이 악몽 같은 상황이 얼마나 오래 갈는지요? 나의 사는 날이 얼마나 남았으며, 언제 그 날이 다할는지 말씀해주옵소서. 기껏해야 내 생명의 길이는 내 손의 넓이에 불과하며, 당신의 영원에 비할 때 내 평생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물거품처럼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림자같이 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미친듯 이리저리 분주히 활동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요? 우리는 아끼고 모으며 살다가 그 모든 것을 배은망덕한 자와 우매한 자와 낯선 이들이 즐기도록 남겨두고 떠나갑니다!”

39:7~8

“그런고로 여호와여,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의 소망은 오직 당신께 있습니다. 당신을 떠나서는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를 모든 죄과에서(특히 내 삶에 이렇게 혹독한 환란을 가져온 죄에서) 건지옵소서. 나는 우매한 자들이 나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습니다.”

39:9~10

“당신은 내가 이 환란이 온 후로 침묵을 지킨 것을 아십니다. 그것은 그 일이 당신의 허용적인 뜻에 의해 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께 구하오니 내게서 징계의 손을 거두소서. 나는 당신의 거듭되는 징책으로 완전히 탈진했습니다.”

39:11

“여호와여, 당신이 여러 가지 형태의 징계로 사람의 죄를 바로잡으실 때 그는 귀한 옷이 좀에 먹히듯이 쇠망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모두 물거품처럼 잠시 있다 사라지는 존재들입니다!”

39:12~13

“그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당신께 나오니 내 기도 소리를 들으시옵소서. 내 절박한 호소를 듣고 응답하소서. 내 눈물에 냉담하지 마소서. 결국 나는 이 당신이 지으신 세상에서 하룻밤을 지나는 길손 같으며, 내 열조와 같은 유목민입니다. 다만 구하오니, 내게 심판을 그치시고 나로 인생의 무대를 떠나 이 세상에서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기 전에 얼마간 건강과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40편 : 나를 건지셨네!

40:1

화자(話者)는 메시야 예수이시다. 그분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기도를 듣고 죽음에서 그분을 건져주실 것을 오래 기다리셨다. 우리의 복스런 주님도 항상 즉각적인 기도응답을 받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지체’가 반드시 ‘거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적합한 때에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어두운 중에 신뢰하는 축복을 모르지 않도록 너무 이르지 않으며, 헛되이 신뢰하는 불행을 알지 않도록 너무 늦지 않네.”

40:2

구주께서는 자신이 죽음에서 건짐 받는 것을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 받는 것에 비유하신다. 죄와 사단과 죽음과 무덤에 대한 승리자로 무덤에서 나오사 영원히 사신다는 것이 생명의 수여자께 의미하는 바를 누가 헤아릴 수 있으리요! 물론 그리스도께서 건짐 받으시는 일은 독특한 일이었으나, 그보다 낮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삶의 웅덩이와 수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삶은 깊은 웅덩이들로 가득하다. 성령에 의해 그의 죄를 찔림 받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특히 ‘기가 막힐 웅덩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 곁에 오셔서 수렁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 발을 반석 위에 두어 우리의 걸음을 안전하게 하실 것이다.

40:3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자 근원이 되신다. 그분은 우리 입에 새 노래를 주시는데,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양의 노래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한 증거를 가져온다.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이것은 어떤 것보다 주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하여 사실이었다. 그 텅빈 무덤의 기적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인도된 믿음의 순례자들의 끝없는 행렬을 생각해 보라!

40:4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 자들을 생각하며 부활하신 구속자께서는 모든 영적인 생활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근본적인 진리 중 하나를 선포하신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생의 참된 행복과 성취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온다. 다른 길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와 주인(선생)으로 인정할 때만 우리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이다.

40:5

그러한 사실은 메시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분의 행사와, 자기 백성들을 향한 그분의 은혜로운 생각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분의 자연적인 창조의 무한한 세계를 누가 충분히 묘사하겠는가? 그분이 베푸신 영적인 축복들(선택, 예정, 칭의, 구속, 화목, 용서, 구원, 중생, 성령의 내 주하심, 성령의 인침, 성령의 보증, 기름부음, 거룩케 함, 양자됨, 후사, 영화 등)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40:6

앞서 말했듯이 6~8절은 이 시를 명백히 메시야적인 시로 분류케 한다. 히브리서 10:5~9에서 우리는 이 고백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오실때 하신 고백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분은 사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제사와 예물을 규정하셨지만 그것은 결코 그분의 궁극적인 의도를 표현해주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들은 장차 올 더 좋은 것의 모형이자 그림자로 규정된 것이다.

40:7~8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셨을 때 그것은 유순한 체념이 아니라 전폭적인 기쁨으로 이뤄졌다. 그 때에 그분은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구약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단순히 오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열의와 준비된 마음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었다.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의 머리에 만 있지 않고 그 가슴 깊이 새겨졌던 것이다.

40:9~10

본문은 그분의 지상사역을 묘사해준다. 그분은 대회 중에서, 즉 이스라엘 온 집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이 선포하라고 주신 것을 숨겨두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움과 지속적인 신실하심과 변치 않는 사랑 등의 위대한 진리들을 홀로 간직하지 않으셨다.

40:11

이 시의 나머지(11~17절)는 우리를 십자가로 인도하는 듯하다. 우리는 구주께서 고통 중에 부르짖으시는 소리를 듣는다. 이 부분은 그분이 10절에서 방금 하신 말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관계를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나는 백성들에게 당신의 구원과 신실하심과 변치 않는 사랑을 증거했나이다. 그러므로 내게서 그러한 인자를 거두심으로 나의 증거를 무효화하지 마소서. 그 인자가 계속해서 나를 보호하게 하소서!”

40:12

그분의 절박한 호소의 직접적인 이유는 갈보리의 고통이 그분을 덮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수한 재앙’은 무수한 죄와 관련이 있었는데, 이는 결과는 원인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이 “나의 죄악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죄악은 사실 우리의 죄악(그분이 그 무서운 형벌을 치르기로 약속하신 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고통은 극심하여 그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로 사면과 용서를 얻게 하려고 그분이 견디신 고난의 깊이를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40:13

극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도움(즉각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하늘 문을 두드리셨다. 마치 “나를 제발 구원하소서, 지금 바로 구원하소서!”라고 외치시는 듯하다. 그것은 승리를 거두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감동을 받아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40:14~15

그 대적에 대해서는, 그들의 죄악에 상응하는 형벌을 요구하셨다. 그분의 생명을 해하려는 시도로 인해 그분은 그들이 수치와 낭패를 당케 되기를 바라셨다. 그분의 재앙을 바란 까닭에 그분은 그들이 쫓겨남과 수치를 당하기를 기대하셨다. 그분의 불행을 즐거워한 까닭에 그분은 그들이 자신들이 심히 낮아진 것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고자 하셨다.

40:16

하나님의 친구들에 대해서는, 항상 여호와로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모든 자는 그분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그분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라고 항상 말하게 되기를 원하셨다.

40:17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 힘은 미약하고 그 필요는 절박했다. 그러나 그분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생각하신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으셨다. 어떤 이의 말대로, “가난과 필요는 하나님의 생각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분은 그 사랑하는 아들의 도움이자 구원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