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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37-3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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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27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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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7-38편 연구

 37편 : 참 평강

다윗은 생애 동안 불경건하고 사악한 사람들에게서 많은 고난을 당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그는, 우리가 악한 계략과 독한 말의 희생물이 될 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준다.

37:1~2
우선, 행악자로 인해 불평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밤에 침상에 누워 그 격분했던 일을 다시 떠올릴 위험성이 있다. 먼저 우리는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을 생각한 다음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 보다 적절한 말로 맞받아 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는 중에 곧 우리 마음은 독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고, 우리는 이리 저리 뒤척거리며 잠이 언제 올지 걱정하게 된다! 우리의 불평은 우리 자신만을 상하게 한 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이다. 심판의 낫 이 곧 그들을 베어 쓰러뜨릴 것이며, 그들의 화려했던 경력은 시들고 쇠잔할 것이다.

37:3
그것(그들로 인해 흥분하거나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지 말 라)이 이 시의 소극적인 측면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첫째로,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해야 한다. 이 의뢰는 모든 것이 잘 될 것 이라는 아무 근거 없는 허울좋은 낙관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건치 않은 자를 징벌하고 의인을 상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깊이, 견고하게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말씀은 실패 하지 않는다. 정직한 자는 정녕 땅에 거하여 안전을 누릴 것이다. 마귀나 사람들의 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양들은 하 나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요 10:27~29).

37:4
그러나 당신이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고픈 큰 소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그분이 당신을 인도해오고 계심을 확신하며, 당신의 유일한 소원은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강력한 대적이 고비마다 당신을 반대하고 제지하고 훼방을 했다. 그 런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답은, 그분의 때에 그분이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줄을 알고 여호와를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

37:5~6
아니면 당신이 오해와 거짓 소문과 비방에 시달릴 수도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면 그 비방을 저버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거짓이요 악의적인 비방이다. 그럴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문제를 온전히 여호와께 맡기라. 그 짐을 그분께 내어드리라. 그분이 당신 대신 행하시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온전히 보상받을 것이다. 당신이 결백함을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37:7~8
당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긴 뒤에 다음 단계는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분이 당신의 짐을 지고 계시므로 당신은 그 짐을 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너무도 종종 그런 과오를 범한다. 우리는 그분께 주저주저하며 염려를 건네주고는 신속히 그것을 다시 가져 온다. “참아 기다리라.” 신자의 자원은 여호와 안에 있다고 거듭해서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 여호와를 의뢰하라(3절). 여호와를 기뻐하라(4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5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7절). (여호와를) 참아 기다리라(7절). 때로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가장 잘하지 못하는 일이다! .

37:9~11
세상의 모든 잘못이 바로잡아질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에 행악자들은 끊어질 것이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성도들은 그분이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소유할 것이다. 머지않아 악인은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들이 늘 출입하던 것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그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 날에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전례 없는 번영을 온전히 누릴 것이다.

37:12~13
그 어간에 사기꾼과 강포자와 압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힐 계략을 꾸민다. 그들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극도의 적의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이를 가는 소리에 분개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회계의 날이 멀지 않음을 아신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대적을 그와 같이 초연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7:14~15
종종 “진실은 영원히 교수대에 달려있고, 거짓은 영원히 보좌에 앉은” 듯이 보인다. 악인은 잘 무장되고 잘 훈련되어 있다. 반면에 의인은 잘 구비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속임을 당한다. 그러나 도덕적인 영역에서는 어떤 변치 않는 법칙이 작용한다. 죄인의 길은 그 끝이 험악하다.

37: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엄청난 부(富)보다 나은 것은 여호와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고 죄인들과는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모든 비할 데 없는 부를 상세히 밝힌 후에 이렇게 덧붙인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 5).

37:17~18
악인의 팔(즉, 그들의 힘)은 부러질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무한한 능력에 의해 붙들린바 될 것이다. 그분은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신다. 즉, 그 날들에 행해진 모든 일과 그 일들이 마침내 가져올 결과를 아신다. 그분은 의인의 기업, 즉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은 모든 자들을 위해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 (벧전 1:4,5)이 영원히 지속될 것을 아신다.

37:19
성도들은 환란이 올 때 그 믿음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숨겨진 영적인 자원이 있다. 기근의 날에 그들은 특별한 종류의 풍족을 누린다. 첫째로, 그들은 희생적으로 사는 법을 배웠기에 양식이 부족할 때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편 그들 은 광야에서 식탁을 능히 배설하시는 여호와를 소유하고 있다. 그 들은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을 보는 특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하늘로부터 오는 그러한 모든 만나에는 특별하고 비밀한 향기가 있다.

37:20
그러나 악인은 멸망할 것이다. 이 시 전체에서 이러한 죽음의 종이 여호와의 대적들을 향해 울린다. 그들은 악한 자, 행악자, 그 길이 형통한 자, 악한 꾀를 이루는 자, 여호와의 대적, 여호와께 저주받은 자, 악인의 자손, 범죄자 등으로 불린다. “악하다”는 단어 는 이 시에 14번 언급되어 있으며, 중심개념 중 하나이다. 여호와의 대적은 풀의 무성함 같다. 그들은 푸른 잎사귀와 꽃으로 번성하다가 그 다음날 추수하는 자에게 베임당하거나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시들어버린다. 그들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37:21
악인은 빌려가고 갚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갚을 마음이 없거나 갚을 능력이 없음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있음에도 왜 갚지 못하는가? 그것은 항상 지불 능력 이상으로 빌리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탐심의 지배를 받는다. 돈을 잃으면 그는 그 잃은 돈을 메우기 위해 돈을 빌린다. 그는 외상으로 큰 건물을 지은 뒤에 갚을 날이 오면 자신의 재물이 줄어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 번드레한 겉모양 이면에는 경제적인 몸부림이 숨어 있다. 의인은 종종 부족하면서도 매우 마음이 넉넉하여 항상 받기보다 는 주고자 한다.

37:22
의인과 악인의 운명은 그들의 여호와의 관계에 달려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여호와께 복을 받아 땅을 차지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한 자들은 그분의 저주 아래 처하여 멸망할 것이다.

37:23~24
의인의 걸음은 여호와에 의해 정해진다. 이 23,24절에 나오는 ‘사람’은 문맥으로 보아 ‘의인’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그분과 사귐 가운데 거하는 사람의 길을 계획하고 인도하신다. 그분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행하는 자를 붙드신다. 그러한 사람은 시험과 환란을 당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손으로 안전히 붙드시기 때문에 결코 함몰되지 않는다. 또한 의인은 죄에 빠질지라도, 혹 그것이 본 절이 말하는 그런 류의 넘어짐이 아니라 하더라도, 여호와께 버림당하지 않는다.

37:25
다윗은 평생동안(이 시를 쓸 당시 그는 노년이었다)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본적이 없었다. 만일 어떤 이가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예를 알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다면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줄 수 있다. 첫째로, 다윗이 말한 것은 의인이 ‘완전히’ 버림받은 예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다윗은 예외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원칙을 언급했을 것이다.

37:26
의인은 그 자손을 보내어 구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그러이 베풀고 종일토록 빌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 그는 근면과 절약과 보존을 실천한다. 열심히 일하고, 물건을 신중히 사고, 낭비를 없애고, 사치를 피함으로써 그는 기금을 모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준다. 그의 후손은 집에서 그런 교훈들을 잘 배워서 평생에 걸쳐 실천함으로써 복을 받는다.

37:27
이 구절은 선행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 듯이 보이는 성경의 여러 구절 중 하나이다. 우리는 에베소서 2:8~10과 디도서 3:5 과 같은 구절에서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 구원받으면 선행의 열매를 맺으며, 그런 신실한 성도들만이 영원히 거한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37:28
여호와께서는 공의를 사랑하시며, 그리고 그분의 성도들을 영원히 안전히 지키는 것은 그분의 공의에 합한 일이다. 그것은 성도들이 영생에 합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영생을 사주려고 죽으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그 치러진 값을 인정 하셨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신자의 안전함에 대해 묵상하기를 즐긴다(18,24,28, 33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모든 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통해 자신들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다.

37:29
이스라엘의 으뜸 되는 소망은 메시야의 통치 아래 그 땅에 거하는 것이었다. 경건한 유대인들도 아마 하늘 소망이 있었을 것 이나(히 11:10), 그러나 구약시대의 강조점은 평화와 번영의 황금시대 동안에 이스라엘 땅에서 누릴 물질적인 축복에 있었다. 의인이 땅에 영원히 거할 것이란 말씀은 그리스도의 지상 나라가 1천년간 지속된 뒤에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란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영원 상태에서 구속받은 이스라엘은 계시록 21:1에 언급된 새 땅을 기업으로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땅을 영원히 소유하리라는 약속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계속된다.

37:30~31
의인의 말은 지혜로 가득하다. 그의 말은 건전하고 성경적이고 확실하다. 그는 왜곡된 것이나 속이는 말이 아닌 공의를 말한다.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로 인해 그 발이 죄와 부끄러움에 빠지지 않는다.

37:32~33
악인은 무죄한 자를 덮쳐 멸할 기회를 찾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무죄한 자를 적의 세력에 넘겨주지 않으실 것이며, 그에 대한 재판이 열릴 경우 그가 유죄 선고를 당하게 허락지 않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백성의 보호자와 변호자시다.

37:34
그러므로 우리의 최선의 선택은 믿고(여호와를 바라고) 순 종하는(그 도를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릴 다른 길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섯 번째로 시편 기자는 그러한 자는 모두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런 다음 그는 한가지 확신을 덧붙인다. 악인이 멸망할 때 신자들은 그 광경을 지켜볼 것이다. 그들은 그 두려운 사건에 관련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형태의 심판도 받지 않을 것이다.

37:35
다윗은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데 예리하고 지각이 있었다. 그는 악하고 오만한 사람이 그 본토에 심은 푸른 나무처럼 세력을 뻗치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그 나무는 옮겨 심겨지는 불행을 당치 않은 듯 보였다. 그것은 여전히 그 본토에 심겨진 채 왕성하고 장대했다. 그 악인은 그처럼 번성하고 세력이 있었다.

37:36
그러나 다음 순간 다윗은 그곳을 지나쳤고 그 사람은 가버렸다. 다윗은 그를 찾았으나 아무데서도 찾지 못했다. 그 사람은 잠시 번성했다. 그의 세력은 잠시뿐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사라졌고 그의 번성과 세력도 사라졌다.

37:37~38 
시편 기자는 완전하고 정직한 자와 범죄자의 차이를 살피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화평한 자에게는 후손이 있으나 악인의 장래는 끊어질 것이다.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다 육체적인 후손의 긴 계보가 있다.”

37:39~40
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구주요 환란 때에 그들의 힘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때 본능적으로 그분께 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까닭에 그 분이 자신들을 돕고 구원하고 건지신다는 것을 발견한다. 당신은 지금 환란 중에 있는가? 그분을 의지하라. 그분이 당신을 돌보실 것이다!

38편 : 죄에 대한 슬픔

만일 “나의 죄”(3절), “내 죄악”(4절), “나의 우매함”(5절), “나의 재앙(상처)”(11절) 등의 표현이 없다면 이 시는 구주의 고난을 묘사 하는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아마 이 시에 나오는 나머지 표현 중 많은 부분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고난당하시는 주 예수님에게 적용 할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적용은 확실히, 그가 범한 죄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 중에 있는 다윗에게 해당된다

 38:1~4
먼저 다윗은 자신의 고난을, 노하신 하나님의 책망과 그 분의 맹렬한 진노의 징계로 여기며 여호와께 그 손길을 거둬달라고 구한다. 전능자의 화살이 시편 기자의 몸과 마음을 과녁 삼았으며, 하나님의 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 그는 온 몸이 병들었다. 질병은 그의 뼛속까지 침투했으며 모두 그의 죄 때문이었다. 그의 죄악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철저히 인식했다. 거대한 물결 마냥 그 죄악이 그를 덮쳤다. 엄청난 돌덩이 마냥 그 죄악이 그의 기력을 산산이 부쉈다.

38:5~8
그의 몸은 여기저기 썩어 악취가 나는 상처뿐이었다. 그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인식했다. 그는 고통으로 몸이 구부러졌고 쇠약함으로 움츠러든 슬픔의 화신(化身)이었다. 그의 몸은 높은 열이 들끓었고 그 열기를 피한 곳이 없었다. 그는 싸울 기력이 전혀 없었다. 온 몸이 상한 채 신음소리로 겨우 그 상태를 표현할 뿐이었다.

38:9~11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의 괴로움과 그가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 다윗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심장은 거칠게 뛰고, 그의 기력은 급속히 쇠하고, 그리고 그의 눈은 빛을 잃고 있었다. 그의 사랑하는 자들과 친구들은 마치 문둥병자를 피하듯 그를 피했으며, 그의 친척들도 그를 찾아오기를 주저했다.

38:12~14
그의 생명을 해하려는 자들은 음모와 위협과 악행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모든 위협에 귀기울이지 않았으며, 방어하거나 자기를 변호하거나 그들을 꾸짖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38:15~17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어둡다 하더라도 그는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확신 했다. 그는 대적들이 자신의 혹독한 재앙을 기뻐하지 않게 해달라고 구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고통에 시달렸고 인간의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 

38:18
소생된 솔직함과 상한 마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죄를 변명 하려는 의도 없이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자백하며 “송구하옵니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그러한 자세를 취하는 자는 결코 용서가 거부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셨다(잠 28:13). 만일 그런 약속이 없다면 모든 사람은 절망적인 운명에 처할 것이다.

38:19~20
다윗의 생각은 다시 한번 대적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약하고 병들었지만 그들은 왕성하고 강건했다. 이어서 그는 하나님의 징계의 공정성을 인정하는 반면, 대적들이 아무 까닭 없이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그들에게 선을 베풀 었으나 그 보답으로 미움만을 받았다. 그들이 다윗을 대적하는 근본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선을 쫓는 자라는데 있었다.

38:21~22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그를 버리지 말고 가까이 계셔서 속히 도와주실 것을 호소했다. 나의 구주 하나님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