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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매일성경연구 시편  43-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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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4월 30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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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43-44편 연구

43편 :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소서
 
43:1~2
여기서 우리는 시온에서 경배하기를 원하나 경건치 않은 나라와 불의한 자의 방해를 받은 한 추방객(an exile)의 계속되는 기도를 본다. 이것은 대환란 기간에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과 적그리스도에 의해 경건한 유대인들이 압제당하는 모습을 예표할 수도 있다. 먼저는 변호와 도움을 청하는 호소가 나온다. 시편 기자는 믿지 않는 동족과 불법의 사람에 대한 그분의 백성들의 송사를 변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한다.

43:3
이어서 시온에 돌아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기도가 뒤따른다. 이 고백은 비할데 없이 아름답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임재의 빛과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로 이뤄진 호위대를 원했다. 그는 그것이 앞을 인도하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그 뒤를 받침으로 하나님의 성산에 즐거이 되돌아올 것을 확신했다.

43:4
3,4절에 나타난 상황의 진전을 보라. 주의 성산에, 주의 장막에, 하나님의 단에,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참된 경배자는 지리적인 위치나 건물이나 단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그분께로 직접 나아간다

43:5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전망으로 밝은 빛을 받아, 시편 기자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낙망하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도전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분이 확실히 너를 원하는 목적지로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그는 격려한다. “내 영혼아 잠잠하라. 네 가장 좋은 하늘 친구가 가시밭길을 지나 기쁨의 목적지로 인도하리!” (카타리나 폰 슐레겔).

44편 :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양 패배의 쓰라림은 전날의 승리를 기억함으로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얼굴이 우리에게서 숨겨진 듯 보일 때 비로소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44:1~3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개입하는 스릴 넘치는 예들로 가득했다. 그분은 이교도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고 그것을 그분의 백성에게 주셨다. 가나안 족속들을 굴복시킴으로 그분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서 자유를 누리게 해주셨다. 그들이 낙토(樂土)를 차지한 것은 어떤 군사적인 우월함 때문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들이 승승장구한 것도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무가치한 야곱의 무가치한 자손들에게 승리를 주시는 위대한 왕이요 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대적을 파하고 침입자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활은 승리의 무기로 신뢰할 수 없으며, 칼은 충분한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고 그 대적을 완전히 혼란케 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이 그분과의 관계를 계속 자랑하고 그분께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44:9~12
그러나 그 어간에 그들의 노래를 탄식으로 바꾼 일이 일어났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버리사 그들로 수치를 당케하신 듯했다. 군대가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 없이 나아갔다가 곧 패하여 당황하며 물러났으며 대적들이 나아와 이스라엘의 모든 부 (富)을 빼앗아 갔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양떼를 도살자들에게 넘기고 그 남은 자들을 이방 열국에 흩으셨다. 마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값없이 팔아 넘기신 것처럼 모든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대적 들은 대가를 지불함 없이 그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

44:13~16
가련한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유대 백성을 비방하기 위해 속담과 모욕이 동원되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하나님의 백성이 열국 가운데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들의 부끄러움은 피할 길이 없었다. 그들의 낯은 대적의 모욕과 조롱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원수의 목전에서 늘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44:17
이 모든 패배와 수치에 있어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스라엘 편에서 어떤 두드러진 잘못 때문에 그 일이 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때에는 고난과 죄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의 환란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사실에 기인한 듯 보였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위해 고난당하는 경우였다.

44:18~19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거나 그분의 언약을 범하지 않은 백성들에게 임했다. 그들은 그분에 대한 사랑이나 그 분이 그들에게 정해주신 길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들을 승냥이의 버려진 땅에 흩고 사망의 그림자로 덮으셨다.

44:20~22
만일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잊었거나 우상을 숭배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알지 못하시겠는가? 그분은 가장 깊은 생각과 동기를 아신다. 그것이 원인이 아니었다. 백성들은 여호와와의 관계 때문에 고난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분을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견디고 도살장에 끌려갈 짐승처럼 학대를 받고 있었다. 수세기 후에 사도 바울은 동일한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발견하고,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을 묘사하기 위해 시편 44:22을 인용했다(롬 8:36).

44:23~26
이 시는 23절의 절박한 호소에서 절정에 달한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주무시는 듯한 모습에서 일어나 그분의 백성을 위해 개입하라는 촉구를 받는다. 그분의 백성이 티끌 중에 엎드러져 있는데도 과연 하나님이 무관심과 냉담함 중에 그 얼굴을 숨기실 수 있는지, 시편 기자는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기상나팔을 울린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