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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시편 57-58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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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5월 11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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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7-58편 연구

  57편 :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동굴(아둘람 굴이나 엔게디의 굴)에 숨어 있으면서 이 시를 썼다. 그 앞에는 두 가지 실재(은혜로운 하나님과 무서운 대적)가 늘 존재한다. 이 시는 둘 사이를 오가는데, 그러나 은혜로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무서운 대적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크며, 진자(振子)는 그 방향으로 기운다.

늘 존재하시는 하나님(57:1~3)

57:1~3 

시편 기자는 그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는 양 구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긍휼로, 즉 그분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는 과분한 축복으로 보고 구한다. 자신이 어둡고 눅눅한 굴속에 갇힌 것을 잊은 채 그는 자신을 어미 닭의 품에 안긴 병아리처럼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받는 자로 여긴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삶의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머물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는 이러한 특권적인 위치에서 그는 아무도, 아무것도 그분의 백성의 삶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늘 존재하는 대적(57:4)

 57:4

대적은 찢고 삼키는 잔인하고 사나운 사자처럼 무섭다. 그 들의 이는 창과 화살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위험의 와중에도 편안히 누워있다. 이는 믿음이 거둔 실로 놀라운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늘 존재하시는 하나님(57:5)

 57:5

11절에서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대적을 멸하고 그 목적을 이루시는 데서 나타나는 것을 간절히 보고자 한다. 그는 다만 그분의 영광이 하늘 위와 온 세계에 높아지기 만을 소원한다.

늘 존재하는 대적(57:6)

57:6

대적이 이새의 아들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용의주도한 계략을 세웠으며, 그의 영혼은 무겁게 짓눌렸다. 그들이 그를 빠뜨리려고 구덩이를 팠으나 그러나 그들 자신이 거기에 빠지고 말았다.

늘 존재하시는 하나님(57:7~11)

 57:7~11 

시편 기자의 마음이 여호와께 노래하기로 확정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그의 영혼을 깨우고, 비파와 수금의 먼지를 떨어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가 찬양소리로 새벽을 맞기로  결심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사적이고, 지역적인 찬양회가 아닐 것이다. 그는 만 민 중에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찬송할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처럼 무한하고 그 진실하심이 궁창처럼 한량없기 때문이다. F. B. 메이어는,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망으로 개인적인 슬픔을 딛고 일어섰 듯이” 우리는 그분이 높임 받으시는 것을 보려는 위대한 열정으로 우리 자신의 하찮은 슬픔을 극복해야 한다.

58편 : 재판관들이 재판을 받다

58:1~2

이 시는 불의한 재판관과 통치자들에 대한 거센 항의로 시작된다. 세상의 세력가들이 무대에 있다. 그들의 판단이 정직했는가? 그들이 일반 백성에게 공의를 베풀었는가? 그 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그들은 중심에 온갖 종류의 악을 꾸몄다. 그런 다음 그들의 손이 그 마음이 계획한 강포를 행했다. 땅은 공의의 왜곡으로 가득했다.

58:3

주제는 부정직한 관리에서 그들이 속한 보다 넓은 부류의 악인에게로 넓어진다. 그들의 타락은 살아가면서 발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출생으로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의 불법과 거역은 타고난 것이다. 그들은 말을 배우면서 곧바로 거짓말을 시작했다.

58:4~5

그들의 말은 뱀의 치명적인 독처럼 비판적이며 악의적이다. 그들의 귀는 술사가 아무리 능숙하게 연주를 해도 귀를 기울지 않는 귀먹은 코브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58:6~7

다윗은 자연 세계를 통해 그들의 악함을 묘사했듯이, 이제는 심판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찾아 자연 세계로 다시 들어갔다. “그 사나운 사자들의 이를 꺾고 그들의 잔인한 어금니를 뽑으소서. 그들로 땅속으로 속히 사라지는 물이나 지하로 신비롭게 사라지는 시내처럼 사라지게 하소서.” 7절 하반절의 원문의 표현은 확실치가 않다. 그것은 “저들로 촉이 잘려 나간 화살처럼 무디고 무해하게 하소서”라는 뜻일 수 있다.

58:8

이어서 달팽이의 세계로 들어갔다. “달팽이가 점액 자국을 남긴 채 ‘소멸해가듯이’, 그 악인들도 사람들의 왕래하는 자취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달팽이가 실제로 점액상태로 해체되는지 여부는 표현법상 중요하지가 않다. 불타는 집이 “연기 속에 올라간다”라고 말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성경에 나오는 비유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억지반론을 펴는가? 다음으로, 만삭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일광을 보지 못하듯이 그 행악자들이 일찍 죽게 해달라는 저주가 이어진다.

58:9

끝으로 시편 기자는 불타는 가시나무가 그 위의 가마솥이 데워지기 전에 회오리바람에 흩어지듯이 그들이 갑자기 제거되게 해달라고 구했다. 멕클라렌은 이렇게 설명한다. “시편 기자가 상상하는 그림은 여행자 무리가 장막 주위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인 듯하다. 그들은 가마솥 아래 장작을 집어넣고 그들의 허기를 채워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물이 끓거나 음식이 요리되기 전은 말할 것도 없고, 가마솥이 채 데워지기 전에 회오리 바람이 불어와 불과 가마솥과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58:10

본문은 히브리어 원문상 불확실한 점이 일절 없다. 본문은 악인이 징벌 받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높임을 받고, 악인의 피에 그 발을 씻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만일 이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귀에 보복적이요 무자비한 처사로 들린다면 J. G. 벨렛과 함께, 이 은혜 시대에는 심판을 즐길 수 없지만 여호와께서 원수 갚음으로 그 분의 신적인 영광을 입증하시는(vindicates) 때에는 심판을 즐길 수 있다는 말로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진노 보다 타락한 압제자들에게 더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은 병든 감상 (感傷)이요 악한 연약이다”라는 몰건의 말을 생각할 수 있다.

 58:11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심판을 바라보며, 사람 들은 의인이 보상을 받고 하나님이 실제로 이 땅에서 사람들을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