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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공부 시편 67-68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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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5월 18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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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7-68편  연구

67편 : 이스라엘의 선교적 소명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신 것은 그 민족이 선교적인 특성을 지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에게 다음 두 가지 진리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했다.
(1) 유일신(唯一神)의 진리―하나님은 한분뿐이다(출 20:2,3; 신 6:4; 사 43:10~12).

(2) 여호와의 통치에 순종하며 사는 백성은 행복하고 번성한다는 진리(레 26:3~12; 신 33:26~29; 대상 17:20; 렘 33:9).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그분의 축복의 종점이 아닌 통로가 되는 것이었다. 구약 전체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위한 것이었으며,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과 열방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다는 증거가 무수히 많다. 불행히도 이스라엘은 그런 측면의 사역에 실패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짐으로써 그들이 선포하도록 부름 받은 바로 그 진리를 부인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그렇게 쉽게 좌절되지 않는다. 대환란 동안 믿는 유대인 잔존자들이 온 세상에 왕국복음을 전할 것이다 (마 24:14). 그리고 이어지는 왕국에서 이스라엘은 열방에게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사 61:6; 슥 8:23).

67:1~2
이 시는 그 때를 대망한다. 여기서 우리는 믿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사 이방인을 복음화하는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다. “주의 도를 땅 위에 알리소서” 라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도(길)이심을 기억해야 한다(요 14:6).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만방에, 혹은 개개인에게 경험될 수 있다.

67:3~4
이어서 이스라엘은 선교적인 열정을 토하며, 거대한 찬양의 물결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올려지고, 열방이 그리스도의 은혜롭고 공평한 다스림과 부드러운 목양의 돌봄을 맛보며 즐거운 축제의 시간을 즐기게 되기를 기도한다.

67:5
이스라엘이 세계 모든 백성들로부터 하나님이 찬양 받는 것을 듣기를 열망하듯이, F. B. 메이어의 표현대로, “우리도 그리스도께 면류관을 씌워드리기를 소원해야 한다.”

67:6~7
마지막 두 구절은 천년왕국을 이미 도래한 것으로 묘사 한다. 곡식이 수확되었고 곳간이 가득 찼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말해주는 그러한 모습들은 열방에게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히브리어 학자인 프랜츠 델리취는 이렇게 요약했다. “그분 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시는 모든 축복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도(道)이다.”

68편 : 우리 하나님이 행차하신다!

이 시는 언약궤를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옮기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행사를, 하나님이 궁극적인 승리로 전진하시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합당히 표현해주었다. 궤가 이동할 때 하나님도 이동하셨다. 일반적으로 이 노래는 궤의 역사 가운데 한 특별한 사건(그것이 불명예스럽게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어간 다음 오벧에돔의 집에 머무른 후에 시온산에 돌아온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삼하 6:2~18). 이 행진곡은 다음 일곱 부분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의미를 한결 잘 파악할 수 있다.

(1) 하나님에 대한 서론적인 찬양(1~6절).

(2) 시내에서 광야로의 궤의 이동(7,8절).

(3) 가나안 땅의 진입과 정복(9~14절).

(4) 다윗에 의한 예루살렘 정복(15~18절).

(5) 여부스 족에 대한 승리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림(19~23절).

(6) 궤를 예루살렘 성소로 옮기는 행차(24~27절).

(7)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를 대망하는 즐거워하는 무리(28~35 절).
그 메시야적인 배경에 있어서 이 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갈보리의 승리와 승천과 재림을 묘사한다.

서론적인 찬양(68:1~6)

68:1~3
첫 구절은 궤의 이동이 주요 주제라는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표현은 궤가 처음 시내를 출발할 때 모세가 사용한 표현과 거의 동일하다(민 10:35). 그 거룩한 상자가 진행하는 광경은 하나님이 일어나서 행동을 취하시는 때를 암시해준다. 그분의 대적들에게는 그것이 재앙과 쫓겨남을 의미하지만 의인에게는 깊이 뿌리내린 기쁨을 의미한다. 그분의 대적은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그 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연기처럼 나약하게, 밀이 녹음같이 무력하게 그들은 비틀거리며 멸망한다. 그러나 의인에게는 원수갚음과 보상의 때요 기쁨과 환희의 때이다.

68:4~6
하나님께 찬양을 부르고 광야에서 여호와를 위해 길을 정리할 때이다(사 40:3; 62:10). 그분의 이름은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시다. 그분은 영원토록 찬양 받기에 합당하시다. 무한히 높으신 그분은 외롭고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가까이 하신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변호자)이시다. 그분은 외로운 자들에게는 행복한 가정의 온기와 사귐을 베푸시며, 그리고 부당하게 정죄를 받아 옥에 갇힌 자들은 거기서 이끌어 내어 형통케 하사 즐거이 외치게 하신다. 거역하는 자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황량한 광야에 감금된다. 이어서 이 서론적인 구절들은 ‘진군가’의 표현으로 “우리 하나님이 행진하신다”라고 말한 다음, 그분의 행진이 의인과 반역자에게 미치는 결과를 대조해 보인다. 영어역본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우리말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역주), 이 시 전체에는 하나님의 일곱 가지 이름이 나온다.

엘로힘(1 절), 야(Yah, 4절), 여호와(10절), 엘 샤다이(14절), 야 엘로힘(18절), 아도나이(19절), 여호와 아도나이(20절).

궤가 시내에서 광야로 이동하다(68:7,8)

68:7~8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의 진을 거두고 궤를 앞세우고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는 장면은 실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자연도 그 사건의 엄위함에 사로잡힌 듯했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비로 풀어지고 시내산이 그 광경 앞에 진동했다.

가나안 진입과 정복(68:9~14)

68:9~10
9절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일기를 변케하사 그 땅에 비를 풍성히 내리셨는데, 이는 애굽의 관개(灌漑)와 광야의 가뭄에서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가뭄에 시든 식물이 소생하고 결실함에 따라 온 땅이 생기를 찾았다. 백성들은 여호와로 인해 안식하며 소유가 풍성했다.

68:11~13
이야기의 흐름은 가나안 정복으로 속히 전환된다. 여호와께서 말씀, 즉 대적을 치러 나가라는 명령을 주신다. 그분의 말씀에는 승리의 확신이 암시되어 있다. 이어서 여자들의 큰 무리가 집에서 소식을 전한다.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한다!” 드보라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삿 5장), 여자들이 양 우리를 떠나지 않은 채 전리품을 나눈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단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은으로 그 날개를 덮은 비둘기 같았으며, 빛이 여러 각도에서 비취자 마치 황금 날개처럼 번쩍거렸다.

68:14
대적에게 그것은 저주스런 무리였다. 하나님이 열왕을 살몬의 눈처럼 흩으셨다.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68:15~18)

68:15~16
예루살렘은 여전히 이방 여부스 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에 행한 첫 번째 일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간 것이었다. 그 성을 방어하는 자들은 그 성이 난공불락인지라, 소경과 절름발이도 그 성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다윗과 그 일행은 그 견고한 성을 사로잡고 다윗성이라 일컬었다(삼하 5:1~9). 바로 그 일을 여기서 시편 기자가 언급하고 있다. 그 성이 정복되어 예루살렘이 택한 성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바산 북쪽에 위치한 헐몬의 눈 덮인 정상이 시온산을 시샘의 눈길로 바라본다. 헐몬은 여러 큰 봉우리를 거느린 위엄있는 산이지만 하나님이 그 산을 지나치고 시온을 그분의 영원한 거처로 택하셨다. 그런 까닭에 헐몬이 시온을 시기하는 것이다.

68:17
다윗은 예루살렘을 여부스 족에게서 취한 일을 회상한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참 근원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 것은 그의 뛰어난 전략이나 그의 군대의 패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것은 하나님의 무수한 병거가 그 성을 파한 것이었다. 시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행진이 이제 시온의 그 영광스런 목적지에 이르렀다.

68:18
다윗은 그의 군대가 예루살렘의 높은 곳들을 친 일을 기억하며, 혈과 육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높은 산에 오르사 포로를 취해 가시고, 그들의 주와 구주로 그 백성들 중에 거하시기 위해 전에 반역자들이었던 자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주시는 모습을 보라보았다. 바울은 18절을 그리스도의 승천에 적용시키고 있다(엡 4:8~10).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그분은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즉, 대적에게 영광스런 승리를 거두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허락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상급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받은 선물(시 68:18)을 그분의 교회를 세우고 확장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다시 나눠주셨다(엡 4:8). 여부스 족에 대한 승리로 인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다(68:19~ 23)

68:19~20
시온을 사로잡은 일을 기억하니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절로 우러나왔다. 이 노래는 하나님을 구원자와 심판자 모두로 묘사한다. 구원자로서 그분은 “우리의 짐을 지고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죽음에서 건질 능력이 있으시다.

68:21~23
심판자로서 그분은 그분의 대적, 즉 그들의 불법적이고 악한 행위를 상징하는 긴 머리를 지닌 반역자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분은 바산의 들과 깊은 바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로 그들의 피로 발을 씻게 하고 이스라엘의 개들로 그들의 시체를 먹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22절은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적을 찾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궤를 예루살렘 성소로 안치하는 절차(68:24~27)

68:24~27
다윗은 예루살렘을 취한 후 얼마 안 되어 궤를, 그 안치하기 위해 세워둔 장막에 들여올 준비를 했다(삼하 6:12~19). 그 절차가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궤가 성소로 옮겨질 때에 “시편 기자 는 사실상 ‘보라, 그분이 오신다’라고 말한다.”찬양대가 앞서고 악대가 뒤따르고 그 사이에 젊은 여자들이 소고를 친다. 그 노랫소리를 들어 보라.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남쪽 지파들(작은 베냐민과 유다)에서 북쪽 지파들(스불론과 납 달리)까지 모든 지파들이 참여한다.

하나님의 최종 승리를 대망하는 즐거워하는 무리(68:28~35)

궤가 성막 안으로 사라지자 밖에 있던 백성들이 마지막 기도(28 ~31절)와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온 땅에 촉구하는 노래(32~35절)에 참예한다.

68:28~29
이 기도는 우선 하나님께 그 힘을 명하고, 그분의 백성을 위해 다시금 그 능력을 보이고, 그들을 위해 시작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호소한다. 이 기도는 성전이 예루살렘의 영광이 되고 열 왕이 금과 향료를 크신 왕께 예물로 가져올 천년왕국에서 최종적으로 응답될 것이다(사 60:6).

68:30
30절은 원문상 의미가 모호하나 전체적인 요지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짐승과 수소의 무리를 꾸짖으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갈대 사이에 거하는 짐승들(아마도 악어나 하마)은 애굽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소수는 “열방의 평화로운 무리를 다스리는” 다른 지도자들을 가리킨다(Knox). “모든 이가 은 조각을 발아래 밟기까지”(우리말 성경은 “은 조각 을 발아래 밟으소서”라고 되어 있음-역주)라고 옮겨진 문구는 “그 열방이 은을 가지고 당신께 절할 때까지” 혹은 “은으로 부유케 된 열방을 정복하기까지”라는 뜻일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좋은 의미이다. 그리고 같은 문맥에서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소서”(우리 말 성경은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로 되어 있음- 역주)라는 기도가 올려진다. 이러한 간구는 침략자와 전쟁도발자들이 멸망당할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온전히 응답될 것이다.

68:31
그 날에 애굽의 사절이 조공을 바칠 것이며, 구스인이 온 땅의 왕을 향해 절박하고 탄복하는 심령으로 그 손을 들 것이다.

68:32~35
마지막 구절들은 땅의 열방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존귀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 그 표현은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위대하심을 잘 드러낸다. 그분은 옛 하늘들을 타신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분이다. 그분은 웅장한 소리로 말씀하시는 계시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 위에 있는 전능한 분이시다. 그분은 그 거룩한 처소에서 엄위하신 반면, 그 백성을 굽어 살피사 힘과 능력을 주신다. 남은 한가지 고백은 이러하다.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